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11)
어느 날 국내 유수 기업의 CEO 한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고속 승진으로 최연소 CEO에 오른 유능한 분이셨죠. 그분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사는 게 전쟁입니다.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안합니다.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퇴근도 마음대로 못할 지경입니다."라며 불안함을 호소하는 그분에게 저는〈꽃들에게 희망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책에는 호랑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수많은 애벌레들이 어딘가로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거기에 합류하게 되죠.
호랑 애벌레가 물었습니다. "저 꼭대기에 뭐가 있는데?" /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모두 저기에 가려고 서두르는 걸 보면 아주 멋진 곳인가 봐. 나도 빨리 가 봐야겠어! 잘 가. (...) 호랑 애벌레는 사방에서 떠밀리고 차이고 밟혔습니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무슨 동화책이냐고 시큰둥하던 그분의 표정은 책을 읽을수록 변했습니다. 그저 성공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쫓으며 서로 밟고 밟히는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겠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호랑 애벌레의 모습이 나와 많이 닮아 있지 않나요?
꼭대기를 향해 오르던 호랑 애벌레는 어떻게 됐을까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마침내 근처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조용히 해, 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이 곳은 전혀 고귀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던 사업가 분은 충격을 받은 듯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애벌레와 제가 다를 게 없네요. 왜 그렇게 오르고 지키고 신경을 썼을까요? 결국 허공인데 말이죠. 얼마나 부질없나요."
내담자는 평생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남의눈을 의식하고,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지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쌓아온 것을 내려놓기엔 쉽지 않았던 거죠. 미련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저는 대답 대신 이 구절을 권했습니다.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호랑 애벌레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답을 찾습니다.
눈부신 노랑 날개를 가진 생명체 하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기둥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기어오르지 않고도 어떻게 이렇게 높이까지 올라올 수 있을까?" 그때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오직 나비들만이…."
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나비가 될 수 있을지는 쉽게 확신하지 못하죠. 그때 고치가 되길 기다리는 늙은 애벌레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것같이 보이지만, 고치란 변화가 일어나는 잠시 머무는 여인숙과 같은 거야. (...)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너의 눈에는 혹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누구의 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나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란다. 오직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뿐이지!"
늙은 애벌레는 격려합니다. 물론 고치를 만드는 작업은 큰 변화이지만 동시에 더 높이 오르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요. 애벌레가 아닌 나비로 더 높이 날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입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시나요?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은 사업가분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제일 꼭대기에 앉아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애벌레에 불과했습니다. 나의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뭘 위해 살 것인가라는 이 고뇌의 순간을 잘 견뎌봐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비가 되겠지요?" 그리고 이왕이면 흰나비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덧붙이며 상담을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호랑 애벌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책은 우리에게 결말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호랑나비가 날아오르는 그림 한 장으로 잔잔한 여운만 줄 뿐이죠. 세상 속 치열한 경쟁에 지쳐 자신을 잃어갈 때, 사는 게 전쟁 같을 때 이 책을 펼쳐 보세요.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알려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