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10)
여러분은 살면서 무언가를 잃어 본 적이 있나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지위와 명예 등을 잃을 수도 있지요.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애착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 이데올로기를 잃는 사건을 '대상 상실'이라고 말합니다. 대상 상실의 경험은 성장 과정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우울증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한 권 만나보겠습니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교수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그의 수업을 열정적으로 들었던 제자 미치는 사회적 성공을 좇느라 일에 쫓기고, 일에 쫓기느라 주변 사람들을 소홀히 대하며 살던 중 스승의 소식을 듣게 되지요. 스승을 찾아간 제자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차츰 깨달아갑니다. 두 사람은 매주 만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그 내용을 묶은 책이 바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모리 교수님은 미소를 지었다. "미치,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그게 뭐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그는 소곤거리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은 세상과의 이별, 자기 자신과의 이별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대상 상실을 눈앞에 둔 모리 교수는 자신이 깨달은 삶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고 비탄하거나 분노에 빠지는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데요. 실제로 저는 부모님이나 배우자, 일자리와 재산 등을 잃고 나서 극심한 상심에 빠진 내담자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대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그럴 힘도 잃어버립니다. 그럴 때 저는 이 책을 추천해주면서 이야기하지요. 모리 교수의 입장이라면 제자인 미치에게 무슨 이야기를 가장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남편을 읽고 나서 오랜 시간 힘겨워했던 한 여성 내담자는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건 결혼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라네."
저는 모리 교수와 미치의 결혼에 관한 대화에서 이 구절을 다시 한번 짚어주며 내담자가 매우 힘들어하는 건 그만큼 결혼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분은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까지 끝내는 것은 아니네."라는 유명한 구절을 언급하며 제 앞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슬픔만이 아닌, 상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다독이는 정화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부부가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했던 시간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요.
결혼뿐 아니라 모든 것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족의 중요성, 일의 중요성, 삶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일수록 그것이 사라졌을 때 더욱 큰 상실감에 시달리게 되지요. 엄밀히 말하면 너무나 열심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모두들 그러하듯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 바빠 '세상, 가족, 사랑, 용서' 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고 그로 인해 때로는 방향을 잃었던 것이지요.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 있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그 순간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동안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던 한 내담자는 모리 교수가 미치에게 건네는 이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했는데, 사실 전 다 잃은 게 아니었어요. 이제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더 많이 나누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분은 그동안 힘겹게 일궈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는데요. 사실은 다 잃은 게 아니라는 것, 자신에게는 앞으로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상실을 겪거나 상실을 앞두고 있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다시금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백미는 모리 교수의 장례식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모리 교수는 주인공이 빠진 장례식을 원치 않아 살아생전에 자신이 보고 싶었던 사람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초대해 미리 장례식을 치릅니다. 이 또한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의식이겠지요. 이 책은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현재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상실감에 삶의 의욕이 없어질 때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모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