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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바다 Feb 28. 2019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자유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13)

책이 내 안의 심리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병원의 간호사들은 입원 중인 군인들에게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치료를 받음에 따라 몸은 나아지는 반면, 마음은 회복되지 않는 환자들을 보며 떠올린 방편이었지요. 그저 눈과 입으로 성경 구절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독서의 치유 가능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영국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환자들에게 약물치료 대신 책을 처방하는 등 독서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독서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인간이 인지적 동물인 까닭입니다. 때문에 심리 상담 전문가인 제럴드 코리 박사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가장 적절한 때 적절한 책을 골라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일궈온 회사가 어려워져 워크아웃 신청을 한 어느 CEO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증도 심했는데요. 직원들을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 가족까지 어려움에 빠뜨렸다는 자책감이 점점 커져 자기 환멸의 감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요? 내담자는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걸 놓아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무감정 상태라고 합니다. 무감정 상태에 빠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의욕조차 잃게 됩니다. 
그분 역시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당장 눈앞에 있음에도, 손을 놓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상담도 당사자가 아닌 아내분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었지요. 저는 그분의 감정을 되살리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있는 파주의 이곳저곳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꽃을 만져볼 것, 음식을 먹을 때는 어떤 맛이 나는지 느껴볼 것, 아들과 딸의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아내의 손을 잡아볼 것 등등 차례차례 숙제를 내드렸습니다. 마지막 숙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깨달은 것

이 책은 의사이자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회고록이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이론을 소개하는 사상서입니다. 유태인이었던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언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대해 연구한 결과가 담긴 귀중한 원고 뭉치마저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생애를 바치다시피 한 연구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깊이 절망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절반만 마셨고, 나머지로는 세수와 면도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건강해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것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냥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원하는 환경을 선택하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에게서 나를 발견하다

내담자에게 이 책을 권하며 강조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투사적 동일시'입니다. 책 속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말하지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얻은 결과물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담자는 꺽꺽 울음이 나오거나 억눌러왔던 분노가 폭발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치유의 과정에 있어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감정은 분출과 함께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니까요. 두 번째는 주인공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읽는 것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하는 것으로, 무슨 일이든 가장 안 좋은 경우를 상상하면 현실이 그보다는 나음을 알게 되는 원리이지요. 그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아픔이든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파주 땅이 죽음의 수용소만큼 힘든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담자가 꺼냈던 말입니다. 회피나 포기를 택하지는 않겠다는 다짐도 덧붙였지요. 표정이 없던 얼굴에서 활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직원들을 독려하여 다시 일어설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에서 생존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생에 절망적인 순간은 찾아옵니다. 성과를 냈음에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며, 오랫동안 노력한 대가가 기대에 못 미쳐 좌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련은 때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크고, 그로 인한 상처는 너무나 깊습니다. 무력함에 휩싸이는 순간, 책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에게는 생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실 겁니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절망 속에 있는 것도, 절망 밖으로 나오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 선택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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