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보다 눈부셨던 하루, 사이판의 바다에서
여행을 가면 분주하게 움직이기 마련인데, 이날만큼은 일정도 욕심도 내려놓고 편안하게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켄싱턴 리조트에는 프라이빗 비치가 있었고, 햇살이 제법 따가워서인지 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바다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리조트에는 모래놀이 도구가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그늘에서 놀 수 있도록 그늘막도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더 어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오래 놀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체력도, 관심사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래도 바다는 여전히 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모래를 파다 보니 의외로 작은 소라게를 많이 발견했다. 아이들은 소라게를 잡아 작은 집을 만들어 주고, 바닷가에서 양동이에 물을 떠 오가며 한참을 놀았다. 별것 아닌 놀이였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떤 놀이보다 진지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가족이 요트를 타고 리조트 앞바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카운터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요트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1층 로비로 내려가 요트를 예약했다.
미리 검색을 하며 이 바다에서 바다거북을 보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우리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품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 요트 근처로 갔고, 직원들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이었다. 사이판이 미국령이지만 미국식 영어를 듣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요트에 올라탔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나도 설렜고 아이들도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요트가 점점 바다 멀리 나아가자, 넓은 바다 위에 우리 가족만 있는 것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리조트가 점점 작아질수록 기분은 더 들떴다.
요트를 몰아주신 분은 바람의 방향에 맞게 돛을 바꾸며 능숙하게 운전했다. 아이들이 바다거북을 너무 기다려서 우리는 거북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괜히 민망해진 순간, 갑자기 “sea turtle”이라고 외치셨다.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정말로 바다거북이 눈앞에 있었다. 아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 뒤로 가오리도 볼 수 있었다. 수족관이나 아쿠아리움이 아닌, 진짜 바다에서 만난 생명들이라서 그 감동은 더 컸다.
지금도 바다 위 요트에 앉아 있던 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우리 가족을 위해 천천히 운행을 해 주신 직원분께 감사해서 팁도 드렸다.
바다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남편과 이탈리아 신혼여행에서 했던 남부 투어가 떠올랐다. 여행은 이렇게 하나의 기억을 불러오고, 또 다른 여행의 기억을 덧붙여 준다.
우리 가족만의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참 소중하다고 느꼈다. 함께 놀라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순간에 감탄했던 기억들이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들과 해외에 나와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다 동물을 만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 더 값졌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은 엄마 아빠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만의 기억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그날 사이판의 바다는,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남을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