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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r 14. 2024

보람차요. 주부

아이가 3총사를 만들었다. 2학년 2학기때 전학 온 학교라 아이가 학교나 친구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비교적 밝은 성격의 아이라 2학년때도 나름의 또래친구를 만들어서 제법 잘 지내긴 했으나 3학년 올라가면서부터는 친구가 주는 영향력이 큰 나이라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될지 잘 사귈 수는 있을지 내심 걱정스러웠다. 개학한 첫날부터 내 걱정은 쓸모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첫날 하교하는 아이는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 “친구야 안녕~!” 하면서 헤어지길래 이것저것 마구 물어봤더니 자기 스타일의 친구들이 있어서 이름을 물어보고 바로 친구 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말을 조잘조잘 내뱉아준다. 기특한 것. 엄마 어릴 땐 소심해도 너무 소심해서 이름을 먼저 물어보기는커녕 누가 이름 물어보면 나한테 왜 이러냐고 도망치기 바빴는데 내 미운 모습과는 닮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 안도감이 올라온다.      




내 어린 시절엔 엄마는 밤이 돼서야 만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사업을 말아먹는 아빠를 대신해 언제나 일을 해야 했던 엄마는 밤이 돼서야 지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남은 집안일을 하고 잠이 드시곤 했다. 내 가정환경이 싫었던 난 집에 엄마가 항상 있어주는 집이 세상 부러웠다. 학교 가는 아이를 배웅해 주고 돌아온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잔소리도 해가며 숙제를 도와주고 저녁을 차려주는 그런 엄마를 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 경험을 단 하루도 해본 적이 없던 난 어쩌면 그런 엄마는 세상에 없는 티브이 속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엄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던 난 5학년 때쯤 어떤 예쁜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고 그 친구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친구네 집 담벼락은 그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거대한 주택집이었고 커다란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돌계단이 연못 위 연잎처럼 동동 놓인 채 나를 반겼으며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을 지나자 하얀 강아지들이 혀를 휘날리며 친구와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정녕 집인 것인가 대궐인 것인가 천국인 것인가. 예쁜 친구와 똑 닮은 예쁜 친구 엄마는 시폰이 살랑거리는 앞치마를 두르신 채 우리를 반겨주시며 간식으로 200원짜리 컵떡볶이에만 길들여 있던 내 입맛과는 전혀 다른 달콤 달달 짭 잘한 짜장떡볶이를 손수 만들어주셨다. 난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천국을 다녀온듯한 그 기분에 취해 맨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내 집 방바닥이 아닌 친구네 방에 있었던 핑크색 침대에서 자는 것만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난 막연히 결혼을 하면 시폰이 살랑거리는 앞치마를 두른 채 아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가 큰 걸 지켜볼 수 있는 주부가 되는 게 로망이 되었던 것 같다. 멋진 커리어우먼에 대한 꿈은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꿈이지만 막상 멋진 주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쉽게 밖으로 내뱉기가 어려웠다. 대출을 받을 때조차 주부라는 직업은 맨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주부라는 직업은 어느 누구도 직업으로 봐주지 않는 불편한 어느 경계선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막상 아이를 낳고 경단녀가 되고 나자 나 역시 언제나 주부를 대신할 그 어떤 직함을 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난 어쩌면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선 지금의 내 자리를 가장 원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시폰앞치마의 생생한 기억과 친구를 반갑게 맞아주며 미소 짓던 친구엄마의 얼굴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엄마들의 얼굴보다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 역시 커서 그런 얼굴이 되고 싶었고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었던걸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닐까.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꼭 집으로 불러서 저녁까지 먹이고 헤어지는 걸 좋아하는 내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본인이 놀러 가는 것보단 친구를 집으로 불러서 놀곤 한다. 이번에 친해진 삼총사 역시 개학한 지 2주도 안된 시간 동안 벌써 여러 번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난 아이가 친구들과 약속을 잡겠다고 하면 그 약속을 1순위로 두고 시폰앞치마를 장착한 엄마로 변신한다. 아이들이 좀 커지면서 엄마 없이도 올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더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죄송해하는 엄마들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아이들이 오면 간식부터 저녁까지 집에 있는 모든 걸 끌어모아 먹여주고 편히 놀게 해 준다. 내가 제일 자주 해주는 간식은 바로 짜장떡볶이다. 아이들이 입가에 떡볶이 국물을 묻혀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따뜻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 내가 먹었던 그 맛이 날수는 없겠지만 아이 친구들의 입맛에는 내가 먹었던 그날의 맛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내가 부러워했던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내 아이들에겐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시폰 달린 앞치마를 동여매본다.     


오늘도 3총사와의 예약이 잡혀있다. 예약자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놀 수 있도록 마트에 간다. 내 얼굴에도 어린 시절 보았던 친구엄마의 미소가 빛나고 있길 바라본다.


계단청소를 해주시며 술래잡기를 하는 삼총사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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