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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y 01. 2024

도시락형 얼굴을 가진 자의 슬픔

   

난 계란형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까진.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내 몸은 제2차 성장이 시작되었다. 남다른 성장이었다. 남다른 발육을 기대했던 곳은 쥐 죽은 듯 잠잠했고 엉뚱하게도 남다른 성장은 얼굴형에서 나타났다. 계란형이었던 내 얼굴에 각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떡이며 오징어며 질겅질겅 씹어먹는 걸 좋아했던 난 그 결과가 이렇게 얼굴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계란형이었던 얼굴은 점점 넓어져 계란프라이형으로 변화되었고 그 발육은 아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얼굴면적이 남보다 살짝 가로로 넓어져버린 난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에게 얼굴을 깎아달라며 진상을 부려댔지만 엄마의 살벌한 눈빛을 보니 직접 내 안면을 다듬어주실 기세였기에 더 이상 조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억울했다. 남다른 근육을 가진 다리통도 모질라 얼굴까지 근육이 생기다니! 억울한 마음 참을 길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내손으로 얼굴을 깎을 수도 없는 일 그렇게 오징어라도 조금씩 덜 씹으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큰 불편을 느끼진 못했다. 티비 속 각진 얼굴을 가진 연예인들을 보면 나도 저 정도 이었는지 아니면 저 정도보다 더 심한지 혼자 속으로 비교해 보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각진 얼굴 때문에 지적을 받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각진 얼굴은 나에게 큰 콤플렉스였고 매끄러운 계란형 얼굴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면 은근히 많이도 부러워하곤 했다. 얼굴형을 가릴 수 있는 단발형을 쭉 고수했고 사진을 찍을 때면 언제나 얼굴을 살짝 옆으로 틀어 얼굴형이 정면으로 나오지 않도록 매번 신경 썼다.    

  

대학시절 수업시간이었다. 강의실은 소란스러웠고 교수님은 산만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자 가장 소란스러운 학생을 지목했다. 

“거기 도시락!!!”

‘헉. 도시락? 도시락이면 도시락형 얼굴을 가진 나?? 나 부른 거지 지금??’

나는 넵!!이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내 뒤에 앉아있던 얼굴이 진정 도시락통과 정확히 맞아떨어질 듯 정사각형인 남학우가 함께 일어났다. 교수님은 내가 아닌 그 정사각형 남학우를 부른 것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찔려서 벌떡 일어났고 그렇게 강의실엔 도시락형 남학우와 미니 도시락형 내가 나란히 일어나 있었다. 개망신이었다. 그 남학우는 원래부터 장난이 심해 친구들끼리 도시락이라고 종종 불리던 남학우였는데 난 순간적으로 나를 부른 것이라 착각을 했던 것이었다. 도로 앉을 수도 서있을 수도 없던 그 상황에 내 얼굴은 불타는 도시락이 되어갔고 교수님 또한 당황을 하셔 선 다들 조용히 하라며 상황을 무마시키려 노력하셨다. 누구를 원망하리. 스스로 내 얼굴형을 도시락이라고 생각을 해온 내 탓이지. 난 그날 집에서 이불킥을 오천번은 했던 것 같다.     


그 후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단발을 과감히 잘라버리고 머리를 커트치고 밝게 염색을 했다. 가리고 다니나 드러내놓고 다니나 남들의 눈이 아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문제라는 게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도시락 뚜껑이 열리듯) 단발이 들어 올려질까 신경을 썼고 뛰어다닐 때도 머리를 붙들고 뛰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럴 바엔 그냥 드러내놓고 지금 내 모습에서 장점을 찾고 싶었다. 막상 머리를 자르고 나니 얼굴형보단 머리로 더 시선이 갔고 내 장점인 밝은 피부와 환하게 웃는 미소가 더 잘 드러났다. 주변에서도 잘 어울린다며 만화캐릭터 같다고(포비?) 미팅 제의도 더 잘 들어왔다 후훗. 커트머리는 내 상징이자 캐릭터가 되었고 그렇게 몇 년간 노란 커트머리를 유지했고 콤플렉스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 얼굴을 미니도시락형이다. 머리는 어느새 어깨를 넘게 길러져 있고 얼굴형은 신경 안 쓴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굴형보단 내 얼굴이 가진 장점에 더 공을 들인다. 피부를 맑게 유지하려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눈빛을 보내고 호감 가는 말투를 쓰려고 노력한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많이 웃으려 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얼굴을 돌리는 게 아닌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찍힌 사진을 봐도 얼굴형이 아닌 밝게 웃고 있는 미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엄마 얼굴은 사각형이야 라며 깔깔 웃는 아이의 말에도 그게 엄마가 어려 보이는 비결이라며 맞장구를 치고 이젠 도시락을 봐도 각진 도시락의 형태가 아닌 그 속을 무엇으로 채울지 누구와 어떻게 맛있게 먹을지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난 계란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선망의 눈길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계란형 얼굴을 가진이들도 알고 보면 본인얼굴에 한두 개쯤 불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얼굴에 100% 대만족을 하는 이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더 열심히 가꾸고 키우면 단점은 점점 줄어들고 장점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날 수 있다.     


도시락사건의 추억은 노란 커트머리를 할 수 있게 만든 계기로 대학시절의 풋풋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와서 털어놓지만 그때 내 뒤에 앉아있던 도시락학우는 내게 얼마 후 쭈뼛거리며 전화번호를 물어봤었다. 도시락커플이 될까 튕겼던 게 살포시 미안해진다. 그의 사람볼줄암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한 번쯤 만나볼걸. 그랬으면 우리 자식들은 미니도시락 원투쓰리가 됐을.. 도리도리.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본다. 도시락 학우의 가정에도 나처럼 행복이 항상 깃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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