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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Apr 23. 2024

발표하다 모기가 돼서 날아가네

발표왕이 되고파요


모기가 날아다닌다. 또다시 앵앵거린다. 난 한 마리의 모기. 그것도 애애앵 애애앵 목이매여 구슬프게 우는 모기. 누가 나좀 잡아줘요. 전기파리채도 괜찮아요. 차라기 전기 맞고 기절하고파요.


발표할 때 난 그냥 모기다.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에 말을 하다보면 어느새 모기소리가 된채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친한 사람들과 하는 소규모 모임자리에선 그렇게 종알대며 잘 떠들다가 일어서서 뭔가를 얘기를 해보라고 하면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얼굴은 벌게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어릴때부터 무언가의 장을 맡을 기회가 생기면 미친 듯이 도망을 치곤 했다. 사람들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발표를 하고 유머도 터트리는 사람들이 난 최고로 부러웠다. 앞으로 나서는걸 하지 못하다보니 좋은 기회도, 좋은 사람도 종종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생활을 할때도 팀으로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일은 열심히 해놓고선 발표를 하지 못해서 모든 공을 발표자에게 넘길때도 많았다. 속상했지만 말을 잘 못하는 내탓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할 일만 열심히 하자며 내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 시간을 지나왔다.     


결혼 후 전업맘이 되면서 발표의 기억은 추억너머로 사라졌다. 아이일로 학부모모임이나 총회같은일이 있긴했지만 성향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기에 그건 내일이 아니로구나라고 생각하며 내 가족만 잘 보살피며 지내왔다. 내 인생에 사람들 앞에 나서서 얘기할 일은 절대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였다. 글을 쓰며 살고싶은 욕구는 나를 독서모임과 글쓰기모임으로 이끌었고 모임을 하게되면서 발표를 하게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창한 발표가 아닌 돌아가면서 책에 대해 얘기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소소하게 얘기하는 수준이었는데 난 그것조차 진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차례가 다가올때마다 심장박동은 요동을 쳤고 겨드랑이에 땀이 폭발했다. 순서가 돼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첫마디부터 모기로 빙의되기 시작한다. 뭔말인지 두서없는 말들이 나오면서 앵앵거린다. 죠동이가 뾰족해진다. 모기의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듯 내 눈알도 아득해진다.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올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영영 날아서 저 모기장에 박혀서 기절하고 싶어진다. 모기로 시작해 모기로 끝나버린 내 순서는 그렇게 지나가고 난 또 후회가득한 한숨을 쉬며 내가 내뱉은 말들을 혼자 꺼내보고 또 꺼내본다.     


이번주에도 모임이 2개 있다. 고전독서모임과 글쓰기수업인데 두 모임 다 한명씩 말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당연한 것이다. 모임을 말하려고 만나지 말 안하고 쳐다보고 있으려고 만나는건 아니니 말을 해야한다. 주제에 맞게 책도 다 읽었고 글쓰기 수업 과제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을 못하겠다. 읽은책은 머리에 한가득인데 그 활자들이 입밖으로 잘 꺼내지지가 않고 지들끼리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가끔은 하고싶은 말들을 그냥 글로써서 모임멤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곤 한다. 그러면 누구보다 유쾌하게 잘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청각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할 행동이라 갑자기 귀가 안들린다며 손짓발짓을 하면서 글을 써댈수도 없다. 그럼 말도 잘 못하는 여자가 정신도 요상하다고 모임에서 강퇴 당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누군가한테 들었던 말인데 말을 할 때 떨리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사람 에게만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해보면 떨리는게 덜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해봤더니 떠올려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리고 난 또다시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고 죠동이가 뾰족해진채 앵앵거리는 모기로 변신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떠올리느라 딴생각하느라 멍까지 때리는 모기가 됐다.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이번주는 우황청심원을 먹고 모임을 가면 어떨까 하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이번주 모임때 사람이 좀 노곤노곤해진채 실실거리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면 아 저여자가 청심원을 씹고 왔구나 하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효과는 모임 후 다시 써보고 싶다. 한약냄새만 풍기는 모기로 전략되지만 않길 바래본다. 애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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