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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Nov 05. 2024

40대는 우아할줄 알았지

철없음에 감사해


내 나이 누가 다 훔쳐간 건지 난 어느새 40대 중반이 넘어서고 있다. 40대는 막연히 우아하고 여유 있고 권위 있고 귀티도 졸졸 흐르는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20대 때는 젊음을 불사 지르느라고 40대는커녕 30대도 오지 않을 줄 알고 설쳐대며 살았고, 막상 30대가 됐을 때는 결혼과 육아지옥에 빠져 사느라 10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 버렸다. 그러다 덜컥 40이란 나이를 넘어서자 거울 속 내 모습은 내 상상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여자가 서있었다. 그나마 볼만했던 윤기 있던 머릿결은 잦은 염색으로 인해 머릿결은 무슨 머리털로 변신된 채 흰머리와 함께 덥수룩해졌고 피부엔 언제 생겼는지 알 수도 없는 기미와 잡티가 내 허락도 없이 대가족을 만들어 화목하게 거주 중이었다. 쳐진 군살은 또 말해 뭐 해. 땅바닥에 꿀발라 놓은 것도 아니건만 우리 군살군단들은 하나같이 다 아래를 바라본 채 전진 중이고 돌도 씹어먹던 치아는 찬물만 닿아도 시리고 아파서 냉수를 마실 때면 혓바닥을 동그랗게 모아서 목구녕까지 길을 터줘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노안에 소화불량, 비타민D부족, 약해진 관절, 손발 저림 등등 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나이 듦에 관련된 단어들이 나란 사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늙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난 40대 초반 젊어질 수 있는 여러 진상들을 부려댔다. 모든 이들이 젊어지기 위해선 꼭 해야 한다는 것. 바로 운동! 난 운동이란 걸 해보기로 큰 결심을 했다. 헬스는 육덕진 도구들을 보니 겁이 나서 못하겠고 달리기는 끝없이 달리는 게 싫어서 못하겠고 다른 운동이 뭐가 있나 찾아보니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요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야. 이효리도 나랑 동갑이라던데 요가하면서 더 이뻐진 거잖아! 나도 요가하면 이효리처럼... 아니지. 그건 너무 갔지. 어쨌든 젊어질 순 있는 거잖아! 난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요가를 등록했고 모든 운동은 장비빨이니 요가복과 요가양말 요가가방까지 풀세트로 준비했다. 마치 벌써부터 요가 전문가가 된 것만 같았고 어떤 어려운 자세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요가 첫날 온몸을 요가인으로 세팅한 채 비장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가학원은 인도풍의 잔잔한 노래가 흐르고 있어서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초의 냄새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요가샘께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될 수 없는 타고난 요가인 몸매를 장착하신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채 나를 맞아주었고 나도 분위기에 걸맞게 미소로 응답하며 자신 있는 눈매를 매섭게 뿜으며 매트가 놓여있는 빈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요가 이쯤이야 훗~ 선생님 따라서 몸 좀 비틀고 꽈주면서 정신수양 잘하면 만사 오케이겠지!’

요가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곧 시작되었다. 난 자신 있는 수강생이니 맨 앞줄 가운데에서 몸을 비틀기 시작했고 그것이 엄청난 실수라는 걸 깨닫는 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더럽게 힘들었다. 하라는 자세는 죽어라 되지도 않았고 온몸에선 비명과 괴성이 터져 나왔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맨 앞줄 가운데에 있는 대가로 선생님의 터치는 두배로 받게 되었고 굽혀지지 않는 내 몸을 선생님께서는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마구 누르고 찢어주셨다. 내 생각으로는 200분은 지난 것 같았지만 시계는 정확히 고작 20분이 지나고 있었고 그때였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까맣게 사라져 버렸다.

께르르르르륵-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난 학다리 자세를 취한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갑자기 사라진 화면과 함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만 내 귀에 들려왔고 난 여전히 학이 된 채 바닥에 대짜로 누워 있었다. 난 한 마리의 패대기 쳐진 학이었다. 


“회원님!! 회원님!!!!”

“어머나 어쩜 좋아~! 기절했나봐~!!”

“회원니이이이임!!! 정신 차려 보세요오오오!!!”

사람들은 나를 중심에 두고 주변에 마구 모이기 시작했고 난 학자세를 풀지도 못한 채 5초 만에 정신이 돌아왔고 또렷이 돌아온 내 정신은 개망신에서 벗어나는 방법까지는 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 하하 하하하…….하하 제가 잠시 기절을 했나봐요....하하하아가아학”

“회원님!! 괜찮으세요?? 제가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여기 물 좀 드세요 물!!”

“아..하하하..하하..하- 괜찮아요...벼..별일 아니예요오.....”

“아니 힘들면 적당히 따라 하시지. 이렇게 기절할 정도로 하시면 어떡해요~! 큰일 날 뻔하셨어요!”


요가샘은 나 때문에 사고 난 학원으로 찍혀서 학원 문을 닫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떠셨던 것인지 깨어난 나를 보곤 털썩 주저앉으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요가수업은 20분 만에 그렇게 막을 내려버렸고 난 그 이후로 다시는 요가학원에 가지 못했다. 선생님 역시 내가 오는 게 두려웠던지 아주 친절하게 학원비를 환불해 주셨고 다신 내 학원엔 오지 말라는 뜻이란 게 충분히 느껴졌다. 나에게 요가란 이효리를 꿈꿨다가 널브러진 학으로 쫓겨난 다신 할 수 없는 운동이 되어버렸고 그때 난 느꼈다. 내 체력은 이미 40대를 훌쩍 넘어섰구나를.      


운동이 안 된다면 피부라도 모찌가 탱글거리는 것 같이 만들어보고 싶었다. 거울을 바라보니 모찌가 되려면 우선 빼야 할 점이 일이십 개가 아니었다. 마음을 단디 먹고 피부과로 향했고 피부과에서 측정한 내 피부상태는 정확히 40대로 나왔다. 젠장할. 보통 어리게 나오던데!! 이건 다 점 때문이야. 내가 진정한 40대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야. 난 목에도 언젠가부터 볼록한 작은 점들이 퍼지고 있었기에 얼굴과 목점을 같이 빼기로 했다. 

‘지지지지직직직직!’

향긋한 고기 타는 냄새가 내 얼굴을 뒤덮었고 잠시 후 내 얼굴과 목엔 재생테이프가 28개가 붙어 있었다. 얼굴이 무슨 바둑판이었나. 어떻게 28개의 점을 빼? 내가 너무 놀라워하자 피부과 샘 또한 놀라시면서 28개의 점은 너무 많이 뺀 것 같다시며 20개의 값만 받아주셨다. 얼굴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기분만은 상큼해졌고 2주간 테이프를 잘 붙이라는 말씀대로 난 매일 열심히 재생테이프를 갈아주었다. 그런데 갈면 갈수록 테이프를 붙인 자리에 피부가 붉게 올라왔다. 막상 점을 뺀 자국은 바늘구멍 만했지만 붙여놓은 테이프 넓이 그대로 피부가 붉어지자 내 얼굴과 목은 온통 붉은 자국들로 가득 차버렸다. 완전 중증 홍역환자였다.      


병원으로 뛰쳐가자 선생님은 요리조리 내 상태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셔서 피부재생 능력이 떨어지시는군요. 테이프는 붙이지 마시고 최대한 시원하게 하시면서 햇빛은 보지 마시고 선크림 잔뜩 바르시고 나을 때까지 요양하십시오.”

뭐시라? 재생이 안돼서 그렇다고라? 그.. 그것도 늙어서? 

선생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른 채 나는 집으로 향했고 밤낮으로 커튼을 쳐놓고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를 흥얼거리며 달력에 X를 그리며 2주를 버텨냈다. 

그 2주간 뼈저리게 느꼈다. 내 피부 역시 40대를 훌쩍 넘어섰구나를.     


그렇게 운동과 피부시술을 말아먹은 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40 대란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방향을 바꿨다.(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하다) 타고나진 못했어도 나만의 40대의 결을 찾고 싶었다. 40대가 꼭 우아하고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의 40대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다른 면은 하나 있었다. 철이 없다는 것. 어른스럽지 못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상상을 하며 키득거리고, 어른스럽지 못하는 글을 쓰면서 또 키득거린다. 가만히 보니 좀 귀여운 40대인 것 같다! 우아한 것보다 어려운 것이 이 나이에 귀여운 것인데 내가 이미 그걸 해내고 있었다니! 갑자기 자부심이 올라온다.      


이런 나이엔 이래야 하고 저런 나이엔 또 저래야 한다는 생각이 내가 가진 장점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이었다. 이런 나이에도 충분히 저럴 수 있고 저런 나이에도 충분히 요럴 수도 있다. 나이 듦을 두려워하고 젊음을 되찾으려 하거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닮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나답게 귀여운 40대를 보내고 더 귀여운 50, 60대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나이 듦에 대한 화두를 붙들고 오랜 시간 묵상하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 갈 길을 가자.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내어주자. 나이 듦과 사이좋게 지내자. 나는 나대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쌓아가자. <밀라논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지금도 오늘도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어느새 40대 중반을 넘어섰고 아마도 쏜살같은 시간들은 나를 곧 50대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우아한 김희애님은 될 수 없겠지만 여전히 귀여운 포비언니로 잘 늙어가고 있을 것 같다. 철이 없음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철없는 언니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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