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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Nov 12. 2021

스탠드

새벽 3시 50분.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리면 벌떡 일어나 알람을 끄고 잠을 깨운다. 새벽 기상 열풍에 따라 시작했지만, 고요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자연스레 기상 시간은 5시에서 새벽 4시로 앞당겨졌다.


일어나면 침실 겸 서재인 내 방 책상을 이용하였다. 그 날도 남편이 깨지 않도록 책상 위 스탠드 불을 최대한 약하게 켰다.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여러 가지를 하는데 남편이 계속 뒤척였다. 내 새벽 루틴 때문에 힘든 모양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스탠드 불빛이 남편 눈에 바로 비쳐서 잠을 자기가 힘들다며 호소하였다. 결혼 전 나에게 선물한 모자이크 액자를 책상과 침대 사이 벽으로 세우기에 이르렀다. 며칠 시달린 후 떠올린 궁여지책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임시로 세워놓은 벽이라 결국 옆으로 휙 쓰러졌다. 그 날 키보드 소리까지 꽤 크게 들렸는지 남편은 폭발했다. 눈치를 살피다가 자연스레 다른 공간을 찾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딸 방을 빌리기 시작했다.


딸은 희한하게도 잠을 잘 잤다. 새벽에 불을 켜도 어린 아이의 잠은 깊었다. 딸 책상에 새로 스탠드도 들였는데, 천장 등에 이어 스탠드까지 켜도 개의치 않고 잠을 잘 잤다. 덕분에 새벽 시간을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런데 이후 스탠드를 켤 때 마다 전원이 안 들어올 때가 많았다. 터치식 스탠드니 터치하면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 원인이 뭔가 생각해 보니 전원을 연결한 멀티탭을 꺼 놓았기 때문이었다. 책상에 앉는 순간 스탠드를 켜고 바로 편하게 쓰고 싶은데 멀리 손을 뻗어 멀티탭부터 켜야 하는 게 귀찮았다. 아이에게 멀티탭 전원을 끄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루는 아이 책상에서 숙제를 봐주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스탠드 등이 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을 뻗어 책상 안쪽에 놓인 멀티탭 전원을 켜고 나서야 터치가 되었다. 매번 말하는데 또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OO야, 제발 스탠드 전원 좀 끄지 말랬지?


스탠드용 멀티탭을 왜 계속 꺼 놓나며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 화를 내고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진짜 잘못한 거 맞아?’


절약을 가르친답시고 아이 경제 교육 서적을 찾고 있으면서 내 행동은 정 반대였다. 멀티탭 전원을 끄는 행동은 할머니 교육 덕분이었다. 늘 안 쓰는 멀티탭 전원은 끄고 다니는데 이를 보고 자란 딸도 멀티탭 전원은 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책상 위 멀티탭은 사용하지 않을 때 마다 철저하게 꺼져 있었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절약과는 반대되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순간의 편리함을 위해 딸 아이에게 멀티탭을 끄지 말라고 했다. 사실 그날 밤에는 일요일 밤 늦게 숙제를 봐 달라는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주말 내내 숙제를 하지 않다가 일요일 저녁 9시에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멀티탭 전원이 크게 느껴졌다.


다음 날 딸이 한 방을 날렸다. 딸 방 방바닥에 슬금 슬금 쌓여가는 책을 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엄마, 이런 책 많이 읽으면 뭐해? 실천을 해야지. 엄마는 책만 읽지 말고 실천을 좀 해!”


스탠드를 꼭 짚어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치하게 스탠드를 핑계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내 모습에 부끄러웠다. 1초면 켤 수 있는데 그게 싫어 딸에게 전원을 끄지 말라고 한 게으름은 무엇인가? 매일 새벽 스탠드 불빛이 비춰도 싫어하기는커녕 새벽 기상하는 엄마를 멋지게 생각하고 응원해주는 딸에 대한 고마움도 올라왔다. 입으로만 절약을 외치고 정작 작은 일 하나 실천 못하는 엄마보다 낫다. 오늘도 스탠드 불빛에도 곤히 새벽 잠을 잘 자고 있는 딸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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