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조명 모던라이트 2025.03.03. 까지
지방사람이 서울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장소가 있다.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처럼, 나도 이번 서울 나들이에 꼭 한 장소를 간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가기 전부터 고민을 했더랬다.
경복궁은 다녀왔고, 광화문거리도 거닐어보았고, 청계천을 중심으로 을지로, 충무로에도 발도장을 찍었다.
동대문에 가서 쇼핑도 하고 성수동, 서울숲길, 여의도공원까지 다 가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안 가본 곳은 어디지?
관악산 등산을 해야 하나?
그러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만들면 만들어지는 것이 시간이지만, 이미 정해진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로 정해진다.
바로 덕수궁이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아'라고 말한다.
내가 내뱉는 말이 나를 만든다.
1907년 순종 즉위 후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성종의 형이었던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덕수궁은 그 쓰임새가 늘 바뀌는 장소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왕궁이 모두 불타 사용하기 힘들게 되자, 1593년 임시 궁궐로 사용되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렸다.
1611년(광해군 3년)에 경운궁으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이 되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물러나고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이 축소되고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로 바뀌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사람들은 참 많이 모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와 정치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
특히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참 많아졌다고 느낀다.
훗날 돌아본다면 역사적 사건 가운데에 참여했던 1인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시린 서울에도 마음만은 뜨거운 사람들이 그 온도를 조금씩 올리고 있는 중이다.
개장시간 오전 9시에 맞추어 들어가니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다.
많은 시간과 돈을 할애한 사람들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함께하는 이 순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태평로 확장 공사로 33m 뒤로 간 대한문이다.
입구에서 교통카드 찍듯이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관광객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기 위해 종이관람권을 받았다.
차곡차곡 귀하게 모아서 나의 역사를 만들어 보아야지.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덕수궁에는 곳곳에 관광안내해설사들이 사람들에게 안내해주고 있었다.
나도 슬며시 옆으로 가 귀동냥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예약해서 들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었다.
다음에 온다면 일주일 전에 예약해서 더 재밌고 실감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덕수궁을 돌아봐야지.
함녕전은 고종의 환궁과 함께 황제의 침전으로 1919년 고종이 승하하기 전까지 계속 이곳에서 지냈다.
함녕전 바로 옆은 덕홍전으로 외국 사신들과 접견을 하던 곳이다.
샹들리에와 봉황문양의 단청, 오얏문양등이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석어당은 덕수궁 내에 유일한 2층 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다.
광해군에 의해 폐위된 인목대비가 갇혀 지낸 곳이다. 그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무릎 꿇리고 폐위시킨 곳이자,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가 즉위한 곳.
옛날 임금의 집이라는 뜻의 석어당은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모습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궁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동, 남, 서 방향에 포치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정관헌은 완연한 서양식 건축양식이다.
하지만 포치 사이에 난간에는 소나무, 사슴, 박쥐 등의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기단 위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인조석 기둥으로 내부를 장식하고 건물의 벽체는 붉은 벽돌로 근대화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동서양 양식을 모두 갖춘 이색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정관헌의 모습.
비교적 덕수궁의 뒤편에 있어 지나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보다 조용하게 사색하며 보기에 좋았다.
문득 드라마 한 편이 생각났다.
바로 '미스터 선샤인'.
동서양의 의복을 두루 갖춘 서양인, 동양인이 모여 자연스레 담소를 나누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장소에서 나만의 상상을 덧붙여 본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으로 사용된 장소다.
중화전의 내부에는 왕께서 앉으시는 어좌가 있으며, 뒤편에는 '일월오악도'가 배치되어 있다.
일월오악도는 왕의 권한이 미치는 모든 곳과 모든 것들이 왕의 아래서 자손만대로 번창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왕실의 무궁한 번영과 번창을 기원하는 것이다.
위 내용은 관광해설을 신청한 사람들 옆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이다.
해설사분의 안내 내용이 알차니 다음 기회에 덕수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신청해서 들어보길 바란다.
모르고 그냥 간 사람은 그저 귀동냥으로 듣고 은근슬쩍 따라가다가 눈치 보고 뒤로 빠지면서 다시 또 쫓아가는 기행을 선보이게 된다.
중화전에서 한 단 내려오면 동, 서로 '드므'를 볼 수 있다.
이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독으로, 물을 담아 놓는 독이다.
드므에 담긴 물에는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망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목조건물에 가장 무서운 불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선조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드므'가 귀엽게도, 애처롭게도 느껴진다.
보자마자 압도되는 건물이다.
바로 덕수궁 석조전.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고종의 침전 및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과 서재를 갖춘 근대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훼손되었지만 2014년,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일주일 전부터 예약해야지만 관람 가능한 곳이 덕수궁 석조전이다.
미리 조사해보지 않은 나를 탓해야지.
정말 정말 보고 싶었지만, 혼자만 아쉬워하며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덕수궁 석조전.
내가 반드시 서울에 다시 와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덕수궁 석조전.
이 내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조명, 벽지, 테이블과 바닥재까지.
구석구석 보고 싶다.
못 보고 오니까 더 보고 싶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돈덕전으로 향했다.
2025.03.03. 까지 진행되는 대한제국 황실 조명 모던라이트 전시.
돈덕전은 국제교류를 실현하고 열광과 대등한 근대국가의 모습과 주권 수호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건립된 건축물이다.
일제에 의해 훼철되었으나 복원정비사업을 거쳐 2023년 개관하였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외형이다.
황실의 조명을 볼 수 있는 귀한 전시. 오늘 오길 참 잘했다.
덕수궁 석조전 내부를 보지 못한 서운함을 돈덕전에서 풀어낸다.
근대적 외교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새롭게 마련된 덕수궁의 서양식 건물에는 연회공간과 어울리는 조명인 샹들리에를 달고 국가 상징물인 이화문을 장식해 주권국가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처럼 근대기 황실에 유입된 조명기구는 격동의 시기에 황실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변화와 그들이 추구했던 방향성이 담긴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에 들어온 조명기구에 담긴 대한제국의 개화의지가 문화와 예술의 번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다.
'이화문'은 19세기말부터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시각적 상징물로 활용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전후에는 '李王家'의 문장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황실 조명전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고 자세하고 아름다웠다.
2층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늘어지게 쉬다가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아카이브는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수직으로 넓은 창에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책장과 책들.
근현대 역사서와 아이들을 위한 책들도 있었다.
창가에 앉아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나는 정말이지 참 좋다.
덕수궁 석조전 보러 오면서 또 돈덕전에 와서 아카이브를 즐겨야지.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서 행복한 오늘이 완성되었다.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혼자서 덕수궁 관람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덕수궁 석조전 내부관람까지 했다면 1시간 30분은 걸렸을 테지만, 다음에는 정말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와야지.
약속이 없다면 아카이브에서 5시간은 더 있을 수도 있을 만큼 좋았다.
서울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경복궁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덕수궁이다.
역사의 격동기에 비록 건물은 부서지고 훼손되었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만은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우리들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고요히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
결국 역사는 승자들의 이야기로만 전승된다.
'오늘'이 다음 세대들이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기록될지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
개인만의 후회 없는 오늘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오늘이 되기를 희망한다.
자료출처 : 2025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https://royal.khs.go.kr/ROYAL/main/index.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