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나룻길 리버워크와 금빛노을 브릿지
아주 오랜만에 맞이하는 속박 없는 주말이다.
정해진 일정처럼 주말마다 찾았던 시골집에서 어제 돌아왔다.
나의 삶이지만, 내 것이 아니었던 주말에서의 해방.
자유를 힘껏 누리고 싶지만, 주어진 책임을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부산 북구 서포터스.
부산의 동쪽 끝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북구까지 달려가야만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산은 이렇게 크고 넓은 곳이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것조차 오히려 좋다.
부산을 야무지게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을 누리는 것.
특별한 장소를 정하지 않았지만, 무작정 구포로 떠나기로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고,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바로 인사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안녕'이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의 말이 같은 유일한 단어.
안녕 구포. 만나서 반가워.
안녕 구포. 잘 있어. 또 보자.
첫인사인지, 마지막 인사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건네는 인사.
오늘은 만나서 반가운 인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구포에 도착했으니 안심이다.
떠날 생각은 없지만, 구포역에 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구포지하철역에 들어가 보니,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감동나룻배 리버워크.
강 위를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구나.
새벽 5시부터 밤 12시 30분까지 제한적이지만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을 걸어보자.
입고 온 옷도, 걸어온 길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 어디를 보고 싶은 걸까.
을숙도일수도, 김해일수도 있다.
어쩌면 마주 보고 있을 누군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이 없는 뒤통수는 각자의 언어로 당신의 안녕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말 오전부터 구포에서 만난 사람들은 봄볕같이 따사로운 맑음을 풍긴다.
집에만 있었다면 몰랐던 것들을 이곳에 와서야 느끼게 된다.
행복은 아주 먼 곳에 있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과 곁에 있는 이를 귀하게 여기는 데에서 출발한다.
왜 이부자리에서 더 눕지 않고 나왔을까. 포근함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늘 같이 있는데 환경이 바뀔 이유가 있을까. 함께하는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각자의 보물이다.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며 걷는 길은 사소한 일상이지만, 혼자 온 사람이 보았을 때 한없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혼자 하는 삶도 재미있지만, 함께라는 호사는 꽤 갖고 싶은 또 다른 감정이다.
특히나 꽃이 만개하고 막연히 걷기 좋은 봄에도 새살이 돋듯이 마음이 간질거린다.
무언갈 새롭게 계획하고 실천하기에 제격인 계절이다.
설렘과 부러움이 넘실거리는 감동을 주는 리버워크가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다.
봄을 알리는 향기로운 향이 진하게 코끝을 잠식한다.
길이 아닌 길을 개척해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비교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을 차지한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쑥을 캐고 계신다.
봄을 야무지게 먹는 방법.
누구를 위해 쑥을 캐고 계신 걸까.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그저 쑥 캐는 것이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한 용돈벌이를 위해 허리를 한번 더 숙여보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람들의 쑥에 대한 열정적인 뒤태를 볼 때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한 때, 뉴욕 센트럴 파크를 잠식한 풀이 있었다.
제초제를 뿌려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그 풀이 관리하는 직원들의 고민거리였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었다.
푯말 하나만 세우면 일주일 만에도 풀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일주일간만 한시적으로 쑥의 채취를 허용합니다.]
단 이틀 만에 센트럴파크 직원들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사실.
쑥을 알아본 한 사람이 기지를 내었고,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 한인들이 쑥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도나도 찾아와 손수 다 가져가버렸다.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봄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한때 사람들을 이곳과 저곳으로 옮겨주었던 나룻배는 아직도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수단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줄을 서 있는 배들 사이에서도 하나가 이탈하여 강의 중간에 놓여있다.
탈주를 꿈꾸는가. 나도 같이 가자. 어디든 가보자.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의 자세가 너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봄 하면 흔히 매화와 벚꽃이 떠오르지만, 유독 나의 눈길을 이끈 꽃이 있다.
눈보다 새하얀 꽃잎들이 올망졸망 존재감을 뽐내는 조팝나무.
꾸준함과 성실함, 소박한 사랑의 의미를 가진 조팝꽃에 시선이 머문다.
벚꽃처럼 흩날리지 않지만, 달달한 향이 나를 이끈다.
가까이서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구절이 떠오르는 조팝꽃.
흔히 보는 봄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 맛에 꽃놀이하는구나.
덕분에 봄을 더 은근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벚꽃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차다.
편한 이동수단이지만, 쓰임을 위해서는 반드시 머물 공간이 있어야 한다.
꽃구경을 사람이 아닌 차가 한다는 발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공간이다.
쉬면서 꽃을 보는 것 또한 좋은 것 아닌가.
지저분한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주는 힘이 크다.
흩날려라 꽃잎들아. 너의 흔적으로 봄소식을 널리 세상에 알려주렴.
불법주차보다 더 부지런히 걷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본보기를 보여주렴.
금빛노을브릿지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구포시장이 언제나 정겹다.
정이 있는 구포시장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봄은 눈으로 보고 코로 느끼며 입으로 맛보아야 하는 계절이다.
제철음식이 보약이듯, 달래와 당근, 시금치와 봄동이 소쿠리 안에 고이 담겨 자신의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단 하나만을 구매해 구포 봄나들이를 마친다.
싱그러운 노란색 향을 숨기지 않는 참외.
나에게 봄은 쑥보다 참외다.
변덕스러운 엄마의 최애 과일.
소화가 잘 되지만, 복통을 주는 달달하고 무른 신묘한 녀석이 나의 구미를 당겼을 뿐이다.
봄은 언제나 새침하다.
불현듯 '안녕'하고 다가왔다가 인사도 없이 불쑥 사라져 버린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작정 찾았던 구포에서 봄의 인사를 받아버렸다.
안녕 구포.
구포가 건넨 인사일까. 먹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던진 다정함일까.
언제나 소란한 구포는 혼자인 나를 기꺼이 품어준다.
떠나기 위해 찾았던 구포는 언제나 찾아오는 이를 반겨줄 뿐이다.
묵묵히 기다려주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기특하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아.
느긋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구포가 좋아.
안녕 구포. 안녕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