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 별은 사라졌을까?

아직도 빛나는 베텔게우스를 보면서

by 변준수

※ 가수 유우리의 베텔게우스 노래를 들으며 읽으면 더 좋습니다.


지난해 일본 싱어송라이터 유우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여러 애니메이션과 더해진 그의 노래 '베텔게우스'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탔고, 나 역시 이를 통해 노래를 들었다. 이전에 언급했던 속 윤하의 '오르트 구름'처럼 이 노래 역시 좋아한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거기에서도 아주 조그마한 땅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별을 떠올릴 때면 내 한계를 벗어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유우리 특유의 멜로디와 가사가 가슴을 적시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저 멀리 반짝이는 베텔게우스의 빛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 밤에도 하늘 저편에 빛나는 별빛은 먼 과거에 폭발하고 남은, 먼 우주를 여행하고 닿은 마지막 빛 한줄기일 수도 있다.


베텔게우스는 겨울철 쉽게 볼 수 있는 오리온자리에 있는 별이다. 흔히 오리온의 왼쪽 겨드랑이 별로도 불린다. 지난해 여러 연구기관에서는 허블망원경을 통해 관측된 결과를 보고 '폭발이 임박했다.', '폭발 전조 증상'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별빛이 급격히 줄어든 결과는 베텔게우스가 별 바깥으로 거대한 가스 구름을 토해낸 뒤 별 앞을 가리면서 지나갔고, 지구에서 관측할 때 순간적으로 밝기가 어두워진 게 이유였다. 하나 확실한 건 베텔게우스 별이 빛나는 데 필요한 수소와 같은 핵융합 연료가 거의 고갈되어 가고 있고, 크기가 큰 별 특성상 초신성처럼 폭발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Cap 2025-02-06 14-28-42-930.jpg 베텔게우스와 오리온자리 항성들 / 출처 : 나사(NASA) 공식 홈페이지


인간의 시간으로 수 억년, 빛의 시간으로 1년이 기본 단위가 되는 우주에서 100년 안에 별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천문학자뿐만 아니라 별을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귀중한 경험이자 하나의 큰 이벤트다. 별의 진화가 막바지에 다다랐고 곧 폭발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는 베텔게우스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어서 빨리 폭발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유한한, 그리고 굉장히 짧은 수명을 생각한다면 별이 폭발하는 장면은 인류 역사에 기록될 큰 사건일 테니. 반면 나는 그 별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아직 사그라지거나 폭발한 게 아니지만 언젠가 없어질 존재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첫사랑이나 잊지 못할 추억 같은 느낌이랄까. 누구에게나 있는 먼 과거의 기억 한 조각, 하지만 현재를 사는 내가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키링 같은 기억말이다.


이 별은 아주 가까이 있다. 640광년, 약 196 파섹(pc)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항성이다. 인간에게 빛으로 1년 가는 1광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곳이지만, 우주에서 이 정도는 방과 방사이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별은 가까운데 엄청 밝아서 여전히 거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일부 학자들은 이미 별은 사라지고 남은 빛이 오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82a500116b0a8efc19cf96412c9b97b4.jpg 영화 <너의 이름은> 포스터


오늘 밤 볼 수 있는 베텔게우스는 백년전쟁 중인 프랑스 북부의 어느 들판에서 싸우던 기사들, 고려 시대 개경에서 하늘을 관측하던 천문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던 대상단, 그들 머리 위에서 반짝이던 별에게서 나와 우주를 유영하기로 한 빛일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나 잊히지 않는 사람을 떠올릴 때면 이제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 순간 느꼈던 온도, 냄새, 소리, 촉감, 그리고 감정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실행되는 것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과거 일어났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그 시간은 소유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기억이라는 뇌 속에 남은 작은 신경 시냅스 간의 작용에 의해 남은 신호만이 우리에게 그 사건이 있었음을 상기시켜 줄 뿐이다. 그마저도 옛 기억을 좋게만 떠올리려는 인간의 특성상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로 저장되어 있을 따름이다.


저 별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100년 안에 별이 폭발한다면 이미 500년 전에 별은 폭발하고 지금 그곳엔 항성의 잔해만이 밀가루 통에서 쏟아진 흔적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라진 별의 흔적을 보는 아주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greg-rakozy-oMpAz-DN-9I-unsplash.jpg 출처 : 언스플래시


대학생 때 만났던 한 외국인 친구는 로켓공학을 전공했었다. 술 한잔하고 기숙사로 가던 길,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는 건 과거의 빛과 현재의 내가 닿는 거야. 저 먼 우주를 떠다니다가 내 눈에 새겨지는 거지."


사람에게 추억은 뭘까. 추억 혹은 기억은 아주 긴 일상에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포인트 포인트마다 새겨진 특별한 감정과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한다. 베텔게우스 빛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라졌다고 해도 특별하게 달라질 건 없다. 옛 기억과 사건들이 지금 우리를 이룬 것처럼, 과거의 빛은 우리에게 닿았고, 현재의 우리는 그 빛을 보고 있으며 미래의 나 역시 별빛을 보면서 그보다 더 나중에 그 순간을 추억할 나를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


何十回 何百回 ぶつかりあって 何十年 何百年 昔の光が

몇 십 번, 몇 백번 맞부딪쳐서 몇십 년, 몇 백 년 옛날의 빛이


星自身も忘れたころに 僕らに届いてる

별 자신도 잊었을 즈음에 우리들에게 닿는 거야.」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어져 있다는 희망이니까. 그리고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모든 순간 한가운데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점일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간과 K-캅스, 슬램덩크 그리고 다나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