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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Feb 08. 2023

나보다 더한 '너'

<이곳은 카페>

-옆에 남자, 책 펴놓고 몇 시간째 게임함.

-옆에 옆에 여자, 노트북 펴 놓고 핸드폰만 계속 붙잡고 있음.

-맞은편 남자, 한국의 치안 수준을 자랑하며 노트북만 펼쳐놓고 어디론가 사라짐.


결론: 나만 딴짓하는 게 아님.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 온몸으로 전해지는 평온함은 무엇인고.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침대와 소파에 밀착되기에 카페라도 왔지만 나란 인간은 심지가 굳은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계속 딴짓의 연속이라니...'


-이럴 때 나의 첫 번째 방법-

1. 어플을 이용해 내가 집중해야 할 시간만큼 핸드폰을 잠근다.

내가 정한 시간 동안만큼은 핸드폰을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핸드폰을 사용하려고 하면 1100원의 벌금이 나온다고 하니... 핸드폰을 살포시 내려놓게 된다. 나는 이 같은 어플 덕분에 논문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의 눈을 속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듯 나도 흐트러진 집중력을 풀 곳을 찾아냈으니... 노트북으로, 태블릿으로 또 다른 짓을 한다는 것...)


-도저히 안될 때 나의 두 번째 방법-

2. 나를 그대로 둔다. 그냥 논다. 실컷 논다.

어차피 막바지... 움직이지 않으면 불이익이 닥칠 그 순간에는 어떻게든 힘을 내 완수한다는 것을 알기에...


두 번째 방법이 지금껏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이런 나를 볼 때면 엄마를 비롯해 함께 사는 남편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댄다.

"너는 왜 그러고 사니?"

"여유롭게 하면 얼마나 좋아?"

"꼭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잘 마치면 괜찮지만... 뒤늦게 서류 준비가 안되거나, 자잘한 실수가 일어나 개피를 보기도 한다. 이럴 거면 일찌감치 시작하면 되지 않나 싶은데... 이상하게도 내 몸은 마감날이 다가와야 움직인다.


근데 나보다 더한 인간이 있었다.

내가 낳은 내 딸이었다.

고3인 딸은 집의 모든 기둥을 뽑아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했기에 대학에 제출할 작품과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바쁜 삶을 살아야 했다. 분명 그렇게 살아야 했다!!!

학원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9-10월에 입학 에세이를 쓰고, 선생님께 피드백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딸은 12월 말까지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고... 학원에서는 내게 끊임없이 전화를 했다.

나: 너 진짜 학원에서 전화 오게 하지 말라고 했지!!! 대체 에세이를 왜 안 쓰는데???

딸: 머리로 생각하고 있어. 나중에 쓸 거야.

나: 언제 쓸건대? 피드백도 받고 수정해야 될 거 아니야. 야!! 내가 돈이 많아서 학원에 돈 낸 줄 알아??


한참 화를 내는데 남편이 귀에 속삭인다.

"완전 너잖아. 너랑 빼박이잖아. 친근감가지 않아??"

하... 때를 가리지 않고 깐족거리는 남편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쟤가 나보다 더 하잖아!!!! 난 저 정도는 아니잖아!!!"

말하고 나니 웃음이 났고, 민망한 나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까지가 피 터지게 싸운 12월의 기록이다.

나는 지금 대학 결과를 기다리며 딸아이와 운동도 하고, 미술관도 가며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

대학 원서를 다 내고 그토록 딸아이가 가고 싶다는 코인노래방에 따라가 아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애도 안 하면서 뭐 그리 슬픈 노래만 부르나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딸아이 옆으로 남편의 모습이 비친다.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남편의 얼굴에 주름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신랑... 딸내미 키우느라 애썼다. 참 많이 애썼어. 여보가 제일 고생 많았어. 버는 족족 갖다 바치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우리 참 애썼다 그치???"

나의 말에 남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노래를 부르고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난다.

'그래... 나란 인간도 잘 살고 있잖아.'

우리 엄마가 내게 하던 "난 네가 돈 벌고 사는 게 젤루 신기해. 근데 네 딸이 너보다 더 낫지 않니?? 걘 더 잘할 거야!"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격려인지 돌려 까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말이지만... 때론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다민아! 넌 잘 살 거야! 넌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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