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나의 두번째 엄마 이야기

by 이한나

"야~ 제목이 딱 끌어당기더라!"

어머니가 책을 샀다는 건 결혼하고 처음 본 일이다. 형님(남편 누나)과 서점에 가 책을 한 권 사온 시어머니는 돋보기를 가져와 책을 펼쳐 들었다.

"어머니 무슨 책인데요?"

우리 가족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우리의 웃음을 뒤로한 채 "야! 이 여자 얼마나 고달팠으면 남편을 빼버린다고 하겠냐? 아이고... 나도 내 인생을 글로 쓰면 말이야... 엄청날 텐데... 한나야!~ 내가 불러줄 테니까 네가 좀 써봐라. 난 세 권은 나올 거다! 게다가 내 이야기 들으면 사람들 다 울거다. 니 책은 눈물 나는 감동이 없어서 잘 안 팔린 거야."


"아.... 네... (뜬끔없이 내 책이 망한 이유까지 알려주시는 친절한 시어머니...ㅋㅋㅋ)"


"내 이야기 들으면 다 펑펑 울 거라니까~ 그래야 잘 팔리는 거야..."


"근데 어머니~ 책 쓰시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책으로 써내고 싶은 이유가 있을거 아니에요?"


"비록 내 첫 번째 인생은 망했더라도, 지금 내 두 번째 인생은 괜찮다고.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힘내라고 그런 거지... 씩씩하게 사는 거 보여줄라고"


"어머니~ 어머니 첫 번째 인생이 왜 망했어? 오빠(지금 내 남편)도 잘 컸고, 형님(남편 누나)도 이렇게 결혼 잘해서 행복하게 사는데... 왜 망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건 내 두 번째 인생이야. 첫 번째 인생은 망했어...."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말하는 첫 번째 인생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여자의 인생'

'아내의 인생'...

그 인생은 비록 초라했지만, 자신의 두 번째 인생, 엄마로서의 인생은 행복하다는 그녀...

나는 집에 돌아와 그녀가 싸 준 반찬들을 냉장고에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으며 결심했다.


그녀를 위해 글을 쓰겠다.

남들이 다 펑펑 울 거라는 그 이야기... 절대로 꺼내놓은 적 없는 그 이야기를 내가 쓰겠노라고....


나는 기억한다.

그녀가 아침밥을 하던 모습을...

여느 날처럼 새벽에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며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그녀가 갑자기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리돈에이' 두통약을 꺼내 입에 털어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요리하던 그녀...

"어머니 어디 아파요?"

"아... 그냥 생리통..."


이제 생각해보니 예전처럼 빠른 몸놀림은 아닌 거 같았다. 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40대의 그녀는 식사를 차렸다.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아프다고 안 했어? 아프면 이야기하고 쉬어야지."

그때 "뭘 아프다고 그래? 아프면 약 먹고 일하는 거지. 아프다고 누가 알아주나?" 생각없이 들었던 말이지만....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집에 보탬이 되겠다고, 식모살이를 자처하며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난 그녀.

16살의 나이로 한 가족들의 식사를 다 챙기고, 청소며 빨래며, 논밭일까지 쉴 틈 없이 일한 그녀.


친구들 학교 갈 때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놀고 싶을 그 나이, 투정 부리고 싶을 그 나이, 예쁜 옷으로 멋을 부리고 싶은 그 나이에...

잠이 들 때 엄마가 보고싶어 흐느끼진 않았을까?


어린 16살의 소녀는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않으며 조용히 약을 찾아먹고는 일을 했겠지...

'누가 알아주나'라고 했던 말처럼... 가족도 아닌, 남의 집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의 사정에 대해 "괜찮니?"라며 먼저 손 내밀어 줬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일까? 한 평생 새벽부터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없이 늘 괜찮다는 그녀...


그런 그녀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온갖 반찬을 만들었다.

챙겨줄 때 하나라도 빼먹기 싫어 메모지에 목록을 적고, 눈이 침침한지 오만 인상을 쓰며 종이를 쳐다보는 그녀.


마음 한켠이 아련하다. 나도 시집온 지 16년이 되어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버렸나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했다.

"어머니! 내가 논문 7월에 끝나니까. 그거 끝나면 어머니 인생, 글로 써드릴게. 자서전 한 번 써봅시다."

이 말에 들어있는 나의 마음을 아실까?


어머니.... 망했다고 생각한 인생... 나한테 다 말해줘요. 어머니 하고 싶은 말, 맘 속에 담아왔던 말....

그냥 편히 다 해버려.... 이제 그만 끌어안고.... 그냥 편하게 해요.

그렇게라도 해서 좀 어머니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 들려주시면... 제가 쓸게요.

가슴속에 꽁꽁 묻어둔 그 이야기 풀어놓으세요.

풀어놓으면서 많이 눈물도 흘리겠죠? 제가 같이 울어줄게요.

한숨 쉴 때는, 저도 천천히 호흡할게요.

그 기억 속에서 괴로울 때는 제가 손을 잡아줄게요.

어머니, 두 번째 인생은 성공이라고 했죠?

우리가 그 성공 더 오래오래 행복하게 누리게 해 드릴게요.

그래서 망했다고 생각한 그 첫 번째 인생이 어머니 삶에서 지나가는 추억이 될 만큼....

그렇게 해 볼게요....


이제 풀어낼 용기가 생긴 것인지 어머니는 내게 카톡을 보냈다.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조용히 혼자 방에서 파스 붙이지 말고요.

두 번째 인생에서는 어릴 때 하지 못했던 표현도, 투정까지도...

하셔도 됩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니의 자서전을 써보려 한다...^^

그 시대의 힘들었던 모든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당신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