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게을리하는, 했던 연주자의 고백
연습은 쉽지 않다. 꾸준한 연습은 더욱 그렇다.
연습 없이 수업을 오는 학생들이 꽤 많다. 엄마손에 이끌려 오는 친구들이 많아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배우러 오는 학생이 준비 없이 온다는 건 용납이 잘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연습을 해오지 않는 친구들에게 크게 화를 낼 수가 없다. 오히려 연습을 안 하는 학생들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랄까. 그만큼 나도 연습을 엄청 안 하는, 날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머리에 흰머리 생기도록 스트레스를 받게 한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 연습[명사]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
연습을 몇 단계로 나누었을 때 가장 힘든 단계는 아마 가장 첫째로 행해져야 하는 피아노 의자에 앉기 위해 그 거리를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이었다. 난 그 거리가 유독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 거리를 걸어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해도 그날 연습은 반이나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두세 시간은 금방 지나갔으니까.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 한번 건드리지 않고 멍하니 있던 적은 지금까지 피아노를 치면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으니(아예 없진 않았다^^;) 누가 뭐래도 가장 어려운 단계임이 틀림없다.
두 번째로 연습은 말 그대로 무한한 반복이다. 프레이즈 하나 아니, 단 하나의 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날 온종일 그 부분만 반복하다 하루 연습이 끝날 때도 많다. "피아노는 엉덩이로 치는 거야" 악기를 배워봤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은 들어봤을 문장이다. 악기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누가 더 진득하게 오래 앉아있냐를 뜻하는 말이다. 내 앞에 있는 악기를 이리저리 만지고 두드리며 정확한 음의 터치와 그 구간에 제일 잘 어울리는 소리와 감정을 연주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바로 이 작업이 '연습'이라는 정의에 들어가는 단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꼬박 연습한 부분이 집에 가기 전에 해결이 되면 내 뜻대로 샤라락 손이 돌아가면 기분이 정말 째지게 좋다. 그때의 성취감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연습을 마치는 시간까지 해결 못할 때도 정말 많은데, 그럴 때는 매우 찝찝하지만 쿨하게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치며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정신건강에도 좋다.
위 두 가지도 연습의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실 이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곡에 대한 자료를 찾아 사전지식과 곡에 대한 배경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작곡가가 남겨놓은 악보를 보며 대답 없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연구하고, 귀를 활짝 열어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내가 연습을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부재가 아닐까 싶다. 피아노 전공길에 늦게 입문한 나는 입시에 쓰이는 곡들을 쳐보고 익히는 데에 급급했다. 내가 하나하나 찾아보고 이해하기보다는 선생님이 주신 지식으로 엉덩이로 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았나 싶다. 내 피아노 생활에 가장 많은 시간을 연습했지만 출발이 늦은 만큼 두배로 열심히 했어야 할 연습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좋은 톤과 나를 멱살 잡고 끌고 가 주신 선생님의 가르침과 도움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곡들을 칠 수 있었고, 테크닉적으로도 많은 성장이 있었지만 그때 친 곡들을 완전히 이해하며 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연습하는 곡에 대한 완전히 이해 없이 무턱대고 연습을 진행하니 힘은 힘대로 들고 연습하러 가는 그 거리가 더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연습이라는 한 단어에 포함시키며 누가 더 이 곡을 잘 이해하고 오래 앉아 반복연습을 통해 음악을 표현하냐에 따라 연주의 완성도 결정된다. 지금도 나는 연습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는 연습을 할 때 그 시간을 미루고 싶다거나 온몸이 뒤틀리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연주해야 할 곡을 만들 때 작곡가의 마음과 그때 당시의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고, 그 의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만드는 스토리를 곡에 투영시키는 작업이 너무 재밌어졌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대로 곡이 연주되었을 때의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들이는 시간은 큰 스트레스 없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진짜 연습의 재미'를 드디어 깨달았다. 내가 내 연주를 마음에 들게 연주하기 위한 욕심이 연습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위에 어려웠던 단계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재미', '즐거움'을 말한다고 연습이 정말 그 단어 그대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피아노 앞에서 '아! 흐아! 하.. 후.. 아..'를 백 번 넘게 외치며 애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도 무언가 앞에서 열심히 애쓰며 싸우고 있는 연습쟁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이런 나를 그래도 피아노로 벌어먹고, 연주생활까지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이끌어 주신 나의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