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_te]그만둔 학생에게 5년 만에 온 연락

그러니까 누.. 누구라고?

by 정든





10년간 지금까지 정말 많은 아이들을 레슨 하면서 나는 '내 제자'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 뭐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오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피아노는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와 어렵게 한 번치고 동그라미를 두세 개 긋는, 또는 그것마저 체크하지 않고 쿨하게 '연습 안 했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 초, 중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매일 도는 학원 중에 하나일 뿐일 텐데 내가 알려주는 이 모든 것들에 관심이나 있을까?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인데, 나에게 무언가를 제대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 학생은 없을 거라고, 피아노를 그만두고 시간이 지나면 나라는 존재도 잊힐 텐데라는 생각에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지 않고 나 혼자 멋대로 그들을 제자로 부르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5년 전, 나를 너무 힘들게 하던 남자 학생이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앉아서 악보를 읽고 건반을 누르는 것보다 빨리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엉덩이가 늘 들썩이는 친구였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항상 피아노를 배우던 그 학생은 늘 뾰로통한 얼굴로 와서 겨우 수업시간만 채우고 갔는데, 그러던 중에 1년에 한 번씩 주최했던 연주회에 그 친구도 참여하게 됐다. 연주곡이 정해 치고 처음 악보를 읽기 시작한 날 대화를 먼저 나눴다.


- ㅇㅇ아. 집에서 피아노 한 곡이라도 끝까지, 멋지게 연주해 본 적 있어?

- 아니요. 없어요. 전 칠 수 있는 게 없어요!

(내가 얼마나 너를 붙잡고 몇 곡을 가르쳤는데 칠 수 있는 곡이 없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니.. ) 순간 멘털이 나가버렸지만 다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 지금부터 배울 이 곡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께 멋진 옷을 입고 제대로 보여주게 되는 첫 번째 곡이 될 거야. (라고 말하고 곡을 쳐서 들려줬다) 들어보니 어때? 곡 마음에 들어?

- 괜찮은 거 같아요.

- 다행이다. 그럼 우리 이 곡을 멋지게 완성해 볼까?

- 해볼게요.


세상에나. 선뜻 '해볼게요!'라는 이 한마디가 이렇게 감동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었다. 늘 청개구리 같은 대답만 하던 친구의 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다니. 정말 곡이 마음에 든 듯 눈이 반짝 빛났다.


물론 무대에 올라가는 날까지 정말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연주무대를 마쳤고 턱시도를 입고 연주를 하고 무대 밖으로 나오는 친구의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더 함께하고 그 친구는 피아노를 그만뒀고, 그렇게 내 추억 속의 한 학생으로 잊혀 가고 있었다.





그리고 5년 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ㅇㅇ이에요!

- 어머나, ㅇㅇ아! 너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무슨 일이야!

- 오늘 선생님을 봤어요. 그런데 가서 직접 인사는 못 드렸어요

... ( 안부)

- 선생님 저 바흐 세레나데 아직도 기억해요. (연주곡이었다.)

- 진짜~~~? 그래 그때 우리 정말 열심히 쳤었잖아 ㅎㅎㅎ 아직도 기억한다니 대단한데?

- 그때 연습할 때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연주 끝나고 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 그랬어? 그래도 너무 잘 따라와 줘서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어.

- 네. 그런데 저도 재밌었어요. 그때 저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해요.



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그 친구는 나와 함께했던 많은 시간 중에 어쩌면 제일 힘들었을 연주 준비기간을 떠올리며 추억했다. 힘들었지만 가장 즐겁고 재밌었다고, 그 곡은 아직도 칠 수 있다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전해오는데 통화하는 내내 마음이 울렁였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정말 순간적으로 울컥 까지 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늘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사실 엄마에게 이끌려 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기에 꽤 많다. 학부모님들은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보내지만, 정작 레슨 받는 아이들은 늘 하루에 들러야 하는 고된 학원 루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피아노 수업 때문에 음악 자체에 흥미를 잃는다거나 스트레스가 될까 봐 늘 마음이 쓰였다. 나에게 전화 온 친구도 그런 아이 중에 하나였다. 그랬던 친구가 나와 함께했던 수업시간들을 즐겁고 재밌는 순간으로 기억해 주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웃으며 나에게 직접 전달해 준 마음이 참 고마웠다.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힘들어하면 선생인 나도 함께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그럼 여기까지 하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올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먼저 놓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며 끝까지 함께하면 그 친구들에게도 결국 나의 마음이 통한다는 걸 오늘 짧은 통화로 증명받은 것 같다. 피아노가 다른 학원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쌓는 수업이 되지를 않기 바란다. 나와 함께하는 피아노 수업은 아이들에게 휴식과 힐링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다독여줘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