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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Sep 05. 2022

대한의원에 깃든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故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서울대학교병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2021년 10월, 고인의 유족이 '고요함과 평화로움'이라는 부제를 지닌 'WORK'라는 작품을 기부한 덕분이다. 이에 대해 故유영국 화백의 장남 유진 후원인(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긴장과 불안, 두려움이 섞인 병원이라는 공간에 봄같은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라며 기부 배경을 밝혔다.


유진 후원인(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작가들의 작가'에서 국민의 자부심으로

유영국(1916~2002) 화백은 1937년 일본 추상미술 재야운동단체인 독립미술협회전에 처음 작품을 발표한 이래, 199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전에 마지막 신작을 내놓을 때까지 60여 년간 자연의 정수를 추상형태로 표현하는 일에 천착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 미술평론가는 '끈기 있게 다듬은 색면 작품들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정열적인 감성을 색깔로 승화해낸 자연으로,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한 광휘에 찬 색채가 체온을 뜨겁게 감돌게 한다'라고 평한 바 있다. 또,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열린 '유영국 탄생 100주년 기념전­ - 절대와 자유'에 즈음해, 한 학예연구사는 '한국의 근대 미술사에서 유영국이라는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부심이 될 수 있다'라고 헌사했다.


이렇듯 유영국 화백은 미술계 전문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중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그 자신이 개인전을 통한 작품 발표에 전념해온 데다, '추상화'라는 장르가 주는 낯설음이 '보이지 않는 벽' 역할을 한 탓이다. 다행히 그의 사후 열린 크고 작은 전시들은 절제된 선과 면 그리고 원색으로 채워진 작품들을 널리 알리며 대중들에게 '유영국'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나갔다.


그리고 2021년 5월, '이건희 컬렉션' 중 그의 작품이 가장 많은 수(회화 20점, 판화 167점)를 차지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유영국 화백의 작품 세계를 향한 문이 비로소 활짝 열린 것이다.



삶의 자세와 철학으로 자녀들에게 담긴 유산

유영국 화백이 거의 평생을 전업작가로, 그것도 대중에게는 어렵게만 여겨지는 추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의 장남으로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진 후원인은 “아직까지도 아버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다"라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실에 들어가셔서 정해진 시간만큼 그림을 그리셨죠. 전시회 준비도 2~ 3일 전에 다 끝낸 후 붓을 닦고 쉬고 계실 정도였어요. 여행가실 때도 마찬가지로, 떠나기 이틀 전이면 가방이 다 꾸려져 있었고 돌아오시는 날짜도 정확히 지키셨습니다. 그만큼 철저한 시간 관념으로,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실제로 유영국 화백은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각각 2년과 4년, 총 6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했다. 안정된 자리나 명예가 아닌 전업작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유영국 화백은 작업실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작가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는 '모더니스트'였다. 동시에 '과묵하지만 자상한' 아버지로 유진 후원인을 비롯한 4남매의 삶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다.


“대학에 다닐 때, 아버님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여쭌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앞으로 시대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살펴라. 네가 한창 활동할 시기는 10~20년 후일 테니,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라고 하시더군요. 당시에는 평범하게 받아들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강요'가 아닌 '대화'를 통해 자녀들의 삶에 지표가 되어준 것이다.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평생 공학자의 길을 걸어온 유진 후원인이 미술을 사랑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가졌던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전시회를 다니는 사이, 자연스럽게 미술 애호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건강과 직결된 병원에 후원을 하면, 상상 이상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정적인 후원은 실질적인 치료나 서비스로 이어질 것이고, 저희처럼 예술 작품을 기부하면 의료진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휴식과 위안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생명을 향한 길에 놓인 위안과 휴식

한창 가치 상승 중인 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서울대학교병원에 후원하게 된 계기를 묻자, 유진 후원인은 오랜 인연을 설명했다. 1983년 심근경색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당시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가까이 유영국 화백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영상의학과에 계셨던 최병인 교수님께 후원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병원에 항상 고마워하셨던 어머님께서 후원 결정을 내리셨고, 가족들 모두가 기꺼이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어 유진 후원인은 “화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림을 많이 봐주는 것 아닐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의료진들이,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고 지친 환자와 그 보호자들 그리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들이 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화사한 봄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WORK(1974)를 골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금속공예가였던 큰 누님(故유리지, 前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 남긴 글이 생각났어요. 본인 작품이 사람들에게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아버님 작품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요함과 평화로움'이라는 부제목을

붙였습니다.”


유영국 화백이 혼신을 다해 그리고 유족들이 뜻을 모아 후원한 WORK(부제: 고요함과 평화로움, 1974)는 현재 대한의원 1층 로비에 전시 중이다. 덕분에 대한의원은 조금 일찍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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