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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Nov 03. 2022

일이 자기 성취의 조건이 되려면

김헌 서양고전학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일하지않아도 되었던 인간들

『성경』의 첫 장면은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일하지 않고도 안락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 기회를 최초의 인간이 망쳤기 때문이다. 태초에 신은 말로써 세상을 만들더니, 손수 흙을 빚어 자신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인간을 '에덴'이라는 낙원 속에 놓았는데, 그곳은 생명의 나무를 비롯해서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수많은 열매로 가득했다. 인간은 신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낙원을 한가로이 거닐며 평안하게 영원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함정이 하나 있었다. 생명의 나무와 함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동산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신은 그것을 절대로 먹지 말라 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최초의 여자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고, 최초의 남자 아담도 건네받아 함께 먹자, 신은 그들을 낙원에서 쫓아냈다. 그 대가는 일단 죽음이었다. 죽지 않아도 될 인간이었으나 언젠가는 죽어야만 했고, 죽음을 미루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땀 흘려 고되게 일해야만 되었다. 애초에 노동은 인간의 본성이나 숙명이 아니라, 우발적인 명령 불복종에 따른 징벌로 인간에게 가해졌다는 뜻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최초의 인간은 축복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황금의 종족이었고, 신들처럼 살았다. 아무 걱정도 없고 노고와 곤궁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으며, 비참한 노령을 겪지 않았다. 언제나 푸르른 젊음을 누렸고 건강한 몸으로 온갖 재앙에서 벗어나 축제의 나날을 즐기며 살았다. 세상은 언제나 봄이었고 부드러운 서풍이 따뜻한 숨결로 만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죽음? 물론 인간이니까 죽어야 했지만, 병약함이나 노령의 쇠약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다가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진 듯 평화롭게 영면했다. 죽은 후에 그들은 착한 정령이 되어 살아 있는 인간들의 '수호천사'가 되었다. 대지는 그들이 수고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곡식과 열매를 듬뿍 제공했고, 가축 떼는 돌보지 않아도 건강하게 자라났다. 노동? 물론 황금의 종족도 일을 했지만,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한 필사의 노고가 아니라 한가로이 밭을 거닐며 꽃을 가꾸는 여흥 같은 것이었다. 일을 안 한다고 해서 게으름으로 치부되지도 않았고, 굴주림이나 헐벗음은 전혀 없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 굳이 한다면 재미삼아 하는 일, 그것이 황금 종족의 노동이었다.



형벌처럼 가해진 노역, 시쉬포스의 신화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신에 대한 불복종으로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황금종족이 사라지고 불경과 죄악의 속성을 가진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철의 종족이 차례로 나타나자, 대지는 더 이상 인간에게 '공짜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형벌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벌로 노역을 해야만 했던 인간들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져 온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시쉬포스(Sisyphus)다. 살아생전 신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속임수를 쓴 것 때문에, 그는 저승의 세계 하데스(Hades)에 가서 끔찍한 벌을 받았다. 산꼭대기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데, 정상에 이르는 순간, 성공의 희열을 느낄 틈도 없이 바위는 다른 쪽 경사면을 따라 땅바닥으로 하염없이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 시쉬포스는 다시 산 밑으로 가서 그 바위를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아야 했다. 이 고된 작업은 성공의 가능성은 없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했다. '시쉬포스'라는 이름도 그가 설 새 없이 가쁜 숨을 쉬며 돌을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노역을 예언처럼 담은 것이다. 그가 왕 노릇하던 코린토스에는 높은 아크로폴리스가 있는데, 그곳에 거대한 성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였기에 원성을 산 것이 신화로 남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신화는 옛날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어떤 일이 끝도 없고 계속 제자리인 것 같은 경우에, 우리는 시쉬포스 같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우리가 고되게 같은 일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것은 시쉬포스의 고역처럼 죽을 때까지 끝이 없고, 또 성취도 보람도 없는 것인가?



고역의 대가는 영웅으로 빛나는 것

노동이 적절한 대가를 가져오는 이야기도 있다. 천하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가 대표적인 주인공인데, 그는 시쉬포스처럼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 12가지 과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제우스(Zeus)의 아들이었지만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의 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헤라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보냈고, 헤라클레스는 미쳐 날뛰다가 아내와 자식들을 적과 야수로 오인하고 도륙하고 말았다. 친족살해의 죄를 씻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10년 동안 10가지 과업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두 개의 노고가 인정되지 않아 결국 12개의 과업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거대한 사자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무시무시한 괴물 뱀 등, 보통 인간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들을 일종의 징벌로서 수행해야만 했다. 심지어 그는 저승 세계까지 내려가 머리가 셋이나 달린 케르베로스(Kerberos)라는 문지기 괴물과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수많은 과업을 수행해야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징벌과 같은 것이었거나, 신들의 요청에 따른 일종의 강제 동원 부역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발적인 노역의 경우엔 주로 사적인 원한을 갚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의 노역 덕택에 사람들은 해악한 괴수들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났고, 신들은 폭력적인 거신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마침내 신들도 헤라클레스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영혼을 거두어 올림포스 산에 거주하는 신이 되게 하였고, 헤라도 그에 대한 앙심을 풀고 자기 딸 헤베(Hebe)를 내주며 사위로 삼았다. 그 이름 그대로 '헤라의 영광(=클레스)'이 된 셈이다. 이 모든 것이 고생스러운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노역을 자청한 영웅도 있었다. 테세우스(Theseus)였다. 그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igeus)의 아들이었지만, 트로이젠(Troezen)에 버려진 신세였다. 성인이 된 그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 아테네로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트로이젠에서 아테네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배를 타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가는 길과 육지로 걸어가는 길인데, 육로는 멀고 험했으며 수많은 악당과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안정적인 해로를 선택했을 텐데, 테세우스는 일부러 고생스럽고 위험한 육로를 택했다. 결국 그는 여섯 명의 악당과 괴수를 물리쳤고, 그로 인해 그의 명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졌으며,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아테네 왕권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 이후에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해치는 크레타 섬의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물리치는 대열에 앞장섰고 멋지게 성공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고역을 선택했고, 그것에 성공함으로써 영웅의 반열에 올랐으며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일은 정말행복의조건인가?

그렇다면 우리 현대인들은 어떨까. 일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거의 대부분은 '실낙원(失樂園)'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감당하기 힘든 고된 일을 해야만 할 때, 무슨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형벌처럼 느끼기 일쑤다.


그래서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아무 죄도 없는 내가 왜...?"라든가,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특히 일에 보람도, 성취감도, 그 어떤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억지로, 죽지 못해 일하는 것 같을 때,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일에 대한 그럴듯한 명분을 세우고 충분한 대가를 얻는 것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확보하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사회적으로 그런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붕괴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반대로 일을 계획하고 뛰어들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획득하고 확인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 우리가 일하는 조건은 어떤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후 답을 모색하며 그 일에 임할 때만이 우리는 행복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김헌 서양고전학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교수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서양고전학자로, 그리스ㆍ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역사,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그리스 문명 기행』,『질문의 시간』, 『천년의 수업』,『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인문학의 뿌리를 읽다』,『고대그리스의 시인들』,『무엇이좋은삶인가』(공저) 등을 지었고,『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두 정치연설가의 생애』,『'어떤 철학'의 변명』등을 옮겼다. 「벌거벗은 세계사」,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서양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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