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E 포 Dec 30. 2023

더이상 호캉스 가지 않는 이유

MZ직장인 미니멀라이프

김영하 작가는 요즘 호캉스가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가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마주하는 공간은 잘 정돈돼 있고 깔끔하니 낯설은 공간에서 평안함을 찾게 된다고 한다.


나는 집에 낯 가린다.


매일 집에서 그 낯설음을 경험하고 있다.

1500만원의 거금을 들여 신혼집을 부분 리모델링했다. 사회초년생의 5개월분 월급치와 맞먹는 금액이다. 무작정 돈을 아끼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돈보다 중요한건 공간이다.

정돈된 공간에서 느끼는 해방감을 위해, 함부로 집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더럽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집은 호텔과 같이 일상의 근심을 담고있지 않다. 호텔방 안에 필요한 큼지막한 가구가 배치되어있듯이 최소한의 가구만이 정렬되어 있다. 지저분한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것을 애써 정리라 칭하지 않는다. 비어있으면 비어있는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더이상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나지 않는다.

집에서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생의 물건들이 주는 하강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페를 가거나 호캉스를 떠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집'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본가나 자취방에선 느끼던 푸근함이나 질척이는 느낌 말이다. 아무리 정리를 하고 비워도 결국 외부공간과는 절대로 같아질 수 없음을 매번 경험하던 그 무력감말이다. 집을 외부공간처럼 느끼며 산다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독특한 감정이다. 마치 내가 건드리면 안되는 남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거리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공간에 대한 적당한 공허감.

사람 간에도 일정한 거리는 그 관계를 담백하게 만든다. 예의를 지키는 그 수고로움이 사이를 맑게 한다. 사람과 공간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어떠한 공간에 있는 한, 공간도 유기체처럼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다. 함부로 더럽히고 어지를 수 없는 그 불편함이 집과 나의 관계를 매너있게 만들어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