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직장인의 미니멀 라이프
북유럽의 여백을 빛으로 채우는 인테리어, 조선백자 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의 여백의 미. 이것들의 공통점은 여백 그 자체가 디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모두가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에 푹 빠져있지만, 어쩌면 우린 여백의 미를 즐길 수 있는 유전자를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이 자리엔 대형 캐리어 하나, 소형 캐리어 하나가 줄지어 서있고 이미 고장 난 모기장이 캐리어들을 기대고 있었다.
물건 버리기를 하고 방의 구조를 바꾸다 보니 낮은 서랍장 위에 있던 갈 길을 잃은 스탠드 하나와 옷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대형 캐리어가 하나 남았다. 두물건이 매트리스 위쪽이자 옷장의 옆인 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조명등이 땅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해서 '침대 간이 테이블'을 구매해서 그 위에 올려둘까 생각도 했었다. 인테리어로도 기능면으로도 꽤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납을 기능으로 하는 물건을 집에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수납이라는 기능을 하기 위함이지만, 웃기게도 그 자체로 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캐리어 하나와, 조명등 하나가 놓여 있는 상태로 또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뜻밖의 타이밍
우연히 다시 힘을 내서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형 캐리어가 옷장 아랫장에 쉽게 들어갔다. 될까 안될까 생각을 하다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도해보니 옷장에 대형 캐리어 넣는 것을 드디어 성공했다. 미니멀리즘 관련 책에서 말하던 일상의 즐거움을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맘에 드는 수납 상태를 찾았을 땐, 그 자체로 꽤 엄청난 쾌감을 준다.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결국 옷장 옆엔 스탠드 조명이 하나 남게 되었다. 아, 옷장에 들어있던 노트북이 든 노트북 가방은 꺼내서 옷장 옆에 기대어 두었다. 글을 적거나, 재택근무를 할 때 노트북이 필요한데, 책상 위에 계속 올려두긴 싫어서 옷장 안에 넣어두었더니, 꺼내기가 불편해지고 기록이 귀찮아지게 만드는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옷장 옆 공간은 스탠드 조명등 하나와 노트북 가방 하나가 남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조명등을 바닥에 두었더니, 이대로 바닥에 있음의 멋이 느껴졌다. 역시 비어져있다면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점수를 얻고 들어가는 효과가 있다. 이 공간 또한 하나의 아지트로 인테리어를 해볼까 틈틈이 고민했지만 이대로 비어두게 되었다. 꽤 넓은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그 자랑스러움은 내 마음속 충만함으로 이어진다. 정리된 여백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이 공간을 쳐다본다. 특히 저녁이 되어 조명등을 켜면 따뜻한 조명이 이 공간을 채우면서 스스로 무언가 고독을 느끼는 종교인이 된 것만 같은 신성한 기분도 든다.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공간도, 다시 돌아 다시 비어지고 행복을 준다. 내 집은 아직도 행복의 발견이 많이 숨겨진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