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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화 Sep 05. 2022

갇혀 살다-다섯

그날 아버지는 맨발로 빙판길을 달렸다

차디찬 겨울

욕조가 없는 낡은 집 부엌에서

열두 살 먹은 계집아이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목욕을 했다

오돌오돌 떠는 계집아이를 어머니는 몇 번이나 껴안으며

"다 됐다, 다 됐다"

연탄불을 간 지 두어 시간

"다 됐다, 다 됐다, 다 됐다, 다 됐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열두 살 계집아이가 쓰러졌을 때

어머니는 다급히 장독에서 동치미 국물을 퍼 오셨다


아버지는 동치미 국물을 채 먹일 틈도 없이

발가벗은 계집아이를 담요에 둘둘말아

십 리나 되는 병원으로 달렸다

"야야, 죽지 마라.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등에서 뜨거운 신열이 났다

"눈 좀 떠 봐라! 숨은 쉬고 있제?"


계집아이는 차가운 바람에 눈을 뜨고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따뜻한 아버지의 등에서

꼬르륵 잠이 든 척 눈을 감은 계집아이는

무엇이 그리 행복한지 더 깊이 아버지의 등을 파고 들었다


이윽고 병원 입구에 다다라

담요에 둘둘 말린 계집아이를 내렸을 때

빙그레 웃는 계집아이를 보며 눈을 흘기셨던 아버지

"못된 가시내, 무신 저런 가시내가 다 있노?"

아버지는 주먹으로 계집아이의 머리통을 쥐어 박았고

계집아이는 아버지가 야속해서 훌쩍훌쩍 울었다


바보같은 계집아이의 열두 살도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빙판길을 달렸던 아버지의 맨발이 기억났다

나는 정말 못된 가시내, 아닌 못난 가시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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