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닮은 아버지
흰 눈이 소락소락 내리는 날
아버지 품에서 요술처럼 벙어리장갑이 나왔다
빨간 꽃무늬가 그려진 벙어리장갑을 끼고
흰 눈을 공글공글 굴리며
눈사람을 만들던 아버지와 어린 딸
솔잎으로 만든 눈썹에는 청춘의 꿈이 박히고
흰 손가락으로 그려 넣은 입술이 아버지를 닮아
좋아라 손뼉치는 어린 딸을 맥없이 바라보던 아버지
"그렇게 좋으냐?"
고개를 끄덕이는 막내딸의 얼굴을
차가운 두 손으로 감싸는 아버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린 딸은 아버지의 차가운 두 손을 잡고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눈사람을 닮은 아버지는 어린 딸을 향해
동그랗게 웃고 있었다
눈사람도 아버지도
봄날의 짧은 햇살처럼
청춘을 버리고 떠날 줄을 알았더라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았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