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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Jul 16. 2023

들라크루아의 일기_18220912

9월 12일

리즈네 큰아버지가 아들*과 앙리 위그**를 데리고 깜짝 방문을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웃에 사는 사제님 댁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그들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나는 엄청난 기쁨에 휩싸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요 며칠 그로 씨*** 댁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참이었는데, 이 생각은 나를 아주 강력하고도 기분 좋게 사로잡고 있다. 


━ 오늘 저녁 우리는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인생에서 보인 다양한 모습들을 꼼꼼하게 기억할 것. 예를 들면 아버지가 네덜란드에 있던 당시, 프랑스 정부 때문에 격앙된 폭도들이 임원들과 저녁 식사하는 아버지를 덮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구는 군인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들 중 하나가 아버지를 겨냥했지만, 형의 제지로 총은 빗나갔다. 아버지는 이 네덜란드 불한당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폭도들과 결탁했던 프랑스 장군이 아버지에게 호위대를 붙여주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매국노의 보호는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수술**** ━ 아버지는 그 전에 친구들과 의사들에게 식사대접을 했고, 일꾼에게는 지시를 내렸다. 수술은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됐다. 네 번째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여, 이제 4막이 끝났네, 5막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세.”

내년에는 이곳에 와서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 


━ 자신이 가진 원칙을 확고하게 다지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것. 아버지를 기억하고, 타고난 변덕을 극복할 것. 지조 없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주지 말 것.


* 프) 에르장과 다비드의 제자였던 앙리-프랑수아 리즈네는 아르다운 가구와 상강세공으로 유명했던 가구 장인 장-앙리 리즈네의 아들이다. 그에게는 독일인 피를 물려받은 레옹 리즈네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따라서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촌인 셈이다. 레옹은 역사 화가였는데, 들라크루아는 자기가 죽으면 샹로제의 시골집과 부속건물, 딸린 가구 모두를 그에게 주라고 유언으로 남긴다. 

   리즈네 삼촌은 조카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그를 격려해주었다. 삐에르-나르시스 게렝의 아뜰리에에 들어가라고 권한 것도 그였다.

   영) 앙리-프랑수아 리즈네(1767-1828)와 그의 아들 레옹 리즈네(1808-78)는 둘 다 화가였다. 앙리-프랑수아의 아버지는 유명한 가구 제작자 장-앙리 리즈네로, 그는 1766년 두 번째 아내로 외벤의 과부와 결혼한다. 당시 그녀에게는 딸 빅투와르 외벤이 있었는데 훗날 그녀가 외젠 들라크루아를 낳는다.

** 프) 앙리 위그는 들라크루아의 사촌으로, 일기에 여러 번 등장한다. 들라크루아는 플랑드르 방식으로 사촌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부분적인 스케치로 끝났다. 이 그림은 현재 레옹 리즈네의 부인 소유이다. 레옹 리즈네는 이 그림을 루브르에 기증하자고 했지만 루브르가 거절했고,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 프) “나는 그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많은 것을 본 나에게 있어,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그는 역사의 주목을 받아 마땅한 화가라 생각한다. 운명이 나를 그로와 이어줬고, 그는 내가 문제의 그 그림(단테의 조각배)을 그린 화가라는 걸 알게 된 후 열정을 다해 말도 안 되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는 무감하게 될 정도였다. 장점을 줄줄 나열한 후 그는 나에게 ‘세련된 루벤스’라는 표현을 선사하며 말을 마쳤다. 루벤스를 경외하고, 에꼴 드 다비드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그에게 있어 그건 찬사 이상의 것이었다…….” 《외젠 들라크루아, 그의 삶과 작품》. 쥘 끌레이 , 1865년, 52쪽

    영) 앙투안 장 그로(1771-1835)는 들라크루아의 작품 ‘단테의 조각배’를 알아보고 강하게 지지해주었다. 그가 들라크루아에게 했던 ‘세련된 루벤스’라는 말은 자주 회자되었다.

**** 프) 들라크루아가 언급한 것은 아버지가 받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수술로, 그 기간 동안 그는 엄청난 참을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고환육종” 수술이었고, 당시만 해도 이 수술이 집도되는 경우가 드물어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외과적 시도에 대한 일화가 담겨 있는 소책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입수할 수 있었고, 제목은 다음과 같다. 《고환육종 수술》 이 수술은 공화력 5년 27일에 시행. 환자는 시민이자, 전 외교부 장관, 그리고 바타브 근처 프랑스공화국 전권사절인 샤를 들라크루아. 수술은 의사 앵베르 드론느에 의해 집도되었다……. 이 책은 정부지시로 공화력 6년에 파리에 있는 공화정 인쇄소에서 발행되었다. 

  영) 샤를 들라크루아는 1979년 9월, 이 위험한 수술을 받았다. 현대에 나온 문서에 의하면, 의학적 견해로 봤을 때 샤를 들라크루아의 수술 후 정확히 일곱 달 후에 태어난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의 아들일 리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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