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소한의 과학 공부> 저자 배대웅
많은 이들은 과학을 어렵다, 복잡하다, 삶에 아무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마 이 기사를 보는 대부분의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과학을 좋아하든, 관심이 없든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은 우리는 모두 과학이 준 편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과학을 피하지 않고 파헤쳐 볼 심산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배대웅의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권하겠다.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기초과학연구원에서 과학 정책을 만드는 배대웅의 절대 강점은 그가 문과생이라는 사실이다. 배대웅은 이 책을 통해 자신과 같은 이들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독자들을 과학이란 깊고 방대한 세계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어렵고 복잡한 이론은 걷어내고, 역사와 사회의 맥락 속에서 소개하는 과학은 일단 재미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브런치에 올렸던 배대웅의 글을 좋아했다. 배대웅의 글에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그가 쓴 음악 관련 글이 그랬다. 배대웅이 소개하는 음악을 꼭 한번은 들었다. 때로는 음악보다 배대웅의 글이 더 좋았다. 그런 배대웅의 글이 과학을 만났고, 하는 수 없이 과학이 조금 좋아졌다.
관련하여 지난 19일 〈최소한의 과학 공부〉의 저자 배대웅을 만났다. 최근 과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관한 의견부터 과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다소 철학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남으려고 과학 공부했는데 정말 좋아하게 돼
- 이력이 특이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논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과학기술 연구소에 들어오면서 10년 넘게 과학기술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일이라면 굳이 과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가 과학 교양서인 <최소한의 과학 공부>까지 쓸 정도가 되었나?
나도 입사하고 알게 된 사실인데 과학을 모르고 과학 정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웃음). 처음엔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보고서 작성이나 행정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내 일을 잘하기 위해 그때부터 과학을 공부했다. 과학자 분들께 귀동냥으로 배우기도 했고, 책, 보고서, 회의록 등을 보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살아남기 위해 과학을 공부한 셈인데 하다보니 정말로 과학을 좋아하게 되었다(웃음). 보통은 과학의 발전이 곧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도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과학은 인류의 문명을 지탱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스로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내 나름대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 최근 출간한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어떤 책인지 저자가 직접 소개한다면?
압축해서 말하자면 과학을 이해해보려는 책이다. 사실 시중에 그런 책이 많다. 다만 그런 책과 차별점이 있다면, 문과의 입장에서 썼다는 점이다. 나도 문과생이라 과학을 싫어했고, 또 지금도 과학이란 것이 절대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어려운 과학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위해선 어떤 우회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바라본다. 역사와 사회 맥락에서 과학을 살펴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관계로 이해하는 과학이라고나 할까? 그 덕분에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과학과 의학, 과학과 정치, 과학과 경제, 과학과 철학을 연결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의학이나 경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정치가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좀 의외였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 설명해주신다면?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 과학 연구소들이 몇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협회나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 영화 〈오펜하이머〉 덕분에 유명해진 미국의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등이다. 이런 세계적인 연구소의 역사를 보면 100년이 넘어가는데, 태동하게 된 목적이 바로 정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시대 때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이 과학 지식을 정치에 이용하고, 부국강병이라는 시대적 목적을 이룩하려고 만든 것이다. 처음엔 제국주의적 배경으로 출범한 연구소들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인류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이용한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과학이 정치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측면도 있다. 이런 예를 보면 정치와 과학은 불가분의 관계로 상부상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발언에 과학자들 상처 받아
- 이렇게 세계의 여러 선진국이 과학에 더 많이 투자하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오히려 퇴행하는 모양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과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는데 관련된 분야에 있는 입장에서 어떤 의견이신지?
사실 이전까지 정부의 R&D 예산은 계속 늘어왔다. 심지어 IMF가 터졌을 때도 R&D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과학을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한 번쯤 조정 국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 R&D는 분명 중요하지만 국가재정이 흔들리고 민생이 어려운 와중에 R&D 예산을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이번 예산 삭감에 있어 그 취지와 방법에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부에서 얘기하는 게 비효율성과 성과의 문제라는 것인데, 만약 비효율성이 문제라면 배분되는 방식을 검토하고 성과가 문제라면 성과 평가 방식을 바꾸면 된다. 물론 이게 말은 쉽지만 기관도 워낙 많고 복잡해서 실행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게 국가고, 그게 행정이 아닌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제대로 살펴보고 생산성 있게 투자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런 지난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일괄 삭감, 일단 깎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한 부분이 아쉽다.
게다가 대통령께서 직접 R&D 카르텔이라는 워딩을 썼는데 이로 인해 과학자들이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내가 만난 과학자들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그들 대부분은 실력 있고, 돈보다는 학문적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 정부는 그런 사람들을 일종의 이익집단인 것처럼 만들었다. 나는 R&D 예산이 깎이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늘리면 그만이고, 금방 회복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크게 실망했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데 있다.
- <최소한의 과학 공부> 경제 파트를 보면 알 수 있듯,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풍요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구는 기후 변화라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고, 이제 인류는 소위 '전기 먹는 괴물'로 진화했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과학의 폐해'가 아닐는지?
폐해가 맞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양면성이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알 수 있듯 원자폭탄으로 인해 2차 대전은 끝냈지만, 더 큰 위협과 위기를 불러왔다. 이 외에도 역사적으로 인류는 과학을 통해 굉장히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이 근본적이거나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원자력이라는 에너지를 개발하면서 인류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원자력은 사고가 한번 나면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력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나? 우리는 결코 과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인류는 이제 대체 에너지를 연구하고 개발한다. 이 또한 과학이다. 결국 과학은 많은 폐해가 있고,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그 문제 또한 과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권위나 독단없이 진리에 이르는 방법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는 과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
그건 내가 아니라 최소 현자 정도 되는 분께 물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은데...(웃음) 내가 소박하게 대답하자면 구원까지는 몰라도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한발 한발 힘겹게 나가는 데 과학이 분명 그 해답이 된다고는 생각한다.
- 개인적으로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보면서 "계몽주의자들이 과학에 열광한 이유는 어떠한 권위나 독단없이 진리에 이르는 그 '방법'에 있었다" 라는 문장이 깊게 남았다. 이것이 과학의 본질이구나, 라고 생각 했달까? 그런데 이 말이 나왔던 배경은 18세기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도 여전히 과학이란, 어떠한 권위나 독단 없이 진리에 이르는 것이라고 보나?
말씀하신 대로 계몽주의는 18세기에 나왔던 사조이고 그때와 지금의 과학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물리학만 봐도 뉴턴의 시대를 지나, 20세기 상대성 이론을 지나, 지금은 양자역학의 시대로 들어왔다. 패러다임 교체가 몇 번씩 일어난 셈이다. 그만큼 과학은 계속 바뀌고 발전했지만 과학의 정신만큼은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런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은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양자역학을 맨 처음 주장한 건 코펜하겐 학파였는데, 그들은 완전 비주류였다. 당시 최고의 과학자는 말할 것도 없이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코펜하겐 학파는 그런 최고의 권위를 가진 아인슈타인에게 반론을 제기한 셈인데, 결국 양자역학이 옳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아인슈타인이라는 권위보다는 과학적 진리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18세기든 지금이든 과학 자체는 달라졌지만 어떤 권위나 독단을 거부하고 진리만을 좇는다는 그 정신만은 그대로다. 만약 그런 정신이 없다면 과학의 존재 이유도 없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개인적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현실의 개선을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맞지만 동시에 과학도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여전히 과학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이 발전하면 산업과 경제발전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나 사회 시스템에도 분명 영향을 미친다. 과학적 사유와 과학적 합리성이 가진 긍정적인 부분을 부디 간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과학 공부〉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