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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정원 Jan 10. 2020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의 반전 과거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를 쓴 김미란씨를 인터뷰하다. 1

당신이 근 10년 사이에 미키마우스 캐릭터 상품을 산 적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한국인이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로 나가는 디즈니 제품의 모든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캐릭터 아트를 2명이서 담당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국내 대학에서 생물학과를 졸업했지만,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었다. 대형 서점엔 애니메이션에 관한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었고, 인터넷이란 개념도 생소하던 이른바 PC통신 시절이었다. 당연히 관련된 정보를 찾을 길도 없었다.


부모님께는 UCLA 미생물학과에 합격했으니 유학을 가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그야말로 무대책,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저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가면 뭐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어디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미국으로 간 20대 청년은 지금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Walt Disney Imagineering)의 컨슈머 프로덕트(Consumer Products) 부서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씨의 이야기다.  


김미란씨는 최근, 자신이 지나온 그간의 삶과 생생한 디즈니 이야기를 담은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를 출간했다. 이 거짓말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저자기 미국에 있는 관계로 인터뷰는 전화를 통해 진행했다.



1mm의 오차 없이 그려야 하는 일


-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디즈니에서 리드 캐릭터 아티스트(Lead Character Aritst)로 일하고 있고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캐릭터 아트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 뿐만 아니라 디즈니의 공주들, 픽사 등도 함께 그리고 있고요."



- 캐릭터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아주 생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정확히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를 좀 말씀해주신다면?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부서의 비즈니스 전략팀에서 1, 2년 뒤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큰 방향을 설정하는 스타일 가이드를 만듭니다. 그러면 관련한 캐릭터 아티스트들이 캐릭터의 포즈를 잡는데, 이걸 콘셉트부터 시작해서 여러 과정을 거쳐 완전한 그림까지 만들어 냅니다. 그 이후 이 캐릭터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팀별, 파트별 역할이 또 세세하게 있는데, 그건 책을 보시면 될 것 같고(웃음).


저희의 주요 업무는 이렇게 1, 2년 뒤를 예측한 스타일 가이드를 만드는 일, 그리고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외에도 라이선스를 가져간 외부 업체들이 디즈니 캐릭터들을 마음대로 변형하지 못하도록 캐릭터의 질을 관리하는 일,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유명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D23 같은 행사에서 라이브 드로잉 쇼 같은 것도 합니다.


또 가끔 아티스트의 개인 취향이 좀 더 많이 들어간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도 있어요. 저는 주로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상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는데 이걸 성인 제품과 어울리는 캐릭터로 변형하는 일을 하기도 하죠. 몇 년 전에는 캡틴 아메리카 방패 디자인을 새로 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스타워즈의 캐릭터 상품을 맡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은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 뭔가 어렵고도,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입니다. 기술성과 예술성이 다 필요한 일일 것 같기도 하고요. 캐릭터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다(웃음).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또 아니긴 해요. 예를 들면 디즈니는 캐릭터의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요. 디즈니에 캐릭터 아티스트로 입사하면 디즈니의 캐릭터를 전부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1mm의 오차 없이 완전하게 그리는 걸 온 모델로 그린다고 표현해요. 언뜻 쉬워 보이지만 미키 마우스만 해도, 눈과 눈동자의 위치나 크기, 눈 사이의 거리, 이마의 길이, 얼굴 라인과 모양, 크기, 몸의 비율, 손발의 크기, 팔다리의 두께와 길이 등등 지켜야 할 규칙이 100가지 정도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캐릭터에 생동감이 있어야 하고 정체성도 유지돼야 하죠.


제가 10년 차에 디즈니에 들어갔는데도 일 년 동안 훈련을 받았어요. 저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했어요. 자랑 같지만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웃음). 이 외에도 다양한 요건들이 있는데 가장 기본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끔 외부 업체에서 저희 승인 없이 캐릭터를 살짝살짝 변형할 때가 있어요. 거기선 미키, 미니만 해도 포즈가 만개가 넘는데 이거 좀 변형한다고 알겠어? 생각하는데... 저희는 압니다. 알아야 하고요. 눈과 손을 다 훈련해야만 하죠."


가끔은 외부 업체에 열 번까지도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캐릭터의 제작 자체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캐릭터들의 퀄리티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 이것이 캐릭터 아티스트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이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일하는 여성의 현실, 한국과 다른 건


- 이번에 출간하신 책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에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회사로서의 디즈니에 관한 내용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디즈니에 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좋은 직장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정말 사랑하는 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회사 일을 좋아하는 것도 그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고, 디즈니에서는 수많은 캐릭터를 가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덧붙여 디즈니는 워낙 큰 회사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지 전부 알 수 없고, 심지어 버뱅크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디즈니 건물인지도 다 몰라요. 저보다 훨씬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도요. 그런 점에서 제가 쓴 책이 디즈니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디즈니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사업 중에 '캐릭터 아트'라는 하나의 파트, 그중에서도 아주 일부라는 걸 감안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럼 꼭 디즈니가 아니라도 직접 다니면서 느낀 외국기업과 한국기업의 차이점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외국 회사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상사에 대한 눈치 보기 같은 게 없는지 이런 것들이 좀 궁금한데요.


 "미국에도 분명 유리천장은 존재한다고 봐요. 미국에 있으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받았던 불쾌한 제안도 있었고, 지금은 좀 나아진 걸로 아는데 제가 공부할 적만 해도 미국 애니메이션판을 보이스 클럽(Boy's club)이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하지만 한국 일반의 기업에 비해 학력, 학벌, 성별로 인한 차별이 덜한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어쨌든 실력을 보여주면 인정하는 분위기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책 작업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요, 책에 워너 브라더스에 관한 얘기가 나와요. 워너 브라더스는 저에게 회사라기보다 은인 같은 곳이에요. 워크 비자를 못 받아서 졸업장만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워너 브라더스에 취직이 되어서 캐릭터 아티스트의 길도 걸을 수 있었고, 영주권도 받을 수 있었고요. 그런데 원고 보더니 출판사에서 그러더라고요. 디즈니랑 워너랑 라이벌인데 워너 얘기를 너무 좋게 써서 혹시 회사에서 '찍히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아무래도 제가 현직이니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우려했겠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여기는 찍히고 그런 거 없으니 괜찮다고.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자기가 너무 '한국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웃었거든요. 뭐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일만 잘하면 된다, 이런 분위기? 상사랑은 정말 격의 없이 지내요. 서로 이름을 부르는 문화라서 그런 것도 있고요. 결론적으로 상사의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경우는 크게 없고, 여성이나, 아시안이라는 차별이 전혀 없진 않지만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까요?


아, 이런 것도 있죠. 제가 지금 비혼으로, 그냥 애인과 동거만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결혼이나 출산은 계획이 없고."


- 이런 것까지 공개해도 괜찮을까요?


 "뭐 어때요. 책에 다 썼는데(웃음). 어쨌든 여기는 가족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남남, 여여 가정도 있고 그사이의 입양도 있고, 저처럼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살면서 입양하기도 하고 정말 다양하거든요.


그럴 수 있는 이유가 그런 다양한 가족 형태를 회사든 사회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요.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더 그런 편이고요. 만약에 한국의 대기업이라면 어떨까, 만약 제가 한국 회사에 다니는데 누가 결혼했냐고 물어봤을 때 동거를 하고 있지만 결혼은 안 할 생각이라고 대답했다면 어떻게 받아들까, 뭐 이런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좀 더 열려있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있을까요?


 "미국 회사에서는 일을 못하거나 해도 아무도 혼내지 않아요. 굉장히 나이스합니다. 대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 했는데 컴퓨터 로그인이 안 돼요... 잠시 후 인사과에서 와요. 그렇게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이런 케이스는 흔치 않고, 대부분의 경우 2주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목돈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무섭죠. 한국처럼 직장 상사가 잘하라는 차원으로 혼내거나 경위서를 쓰거나 그러지 않아요."


처음 미국에 왔던 20살 중반부터 지금까지 은근한 인종차별을 포함한 불합리한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다. 그걸 돌파하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였다. '여자라고 무시하나 본데, 어디 본때를 보여주지' 하며 수백 장 수천 장의 그림을 그렸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나 본데 어디 본때를 보여주지' 하며 밤을 새워 성과물을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였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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