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스런 열병.2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어요 아침은 어김없이 새벽을 지나오죠 우유배달원이 놓고 간 우유는 싱싱한 물방울을 달고 있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음을 달고 있네요 물방울을 퉁기면 쪼개진 것들이 허공에 퍼지네요 어김없이 청량감 혹은 무력함이 일진에 따라 다르게 들어오죠 의도에 어긋난 것들이 들어온 셈이네요



1. 청량

변덕이 심해지기로 해요 편의점에 들러 딸기맛 사탕을 빨죠 담배처럼 손가락 사이에 끼고서 넣었다 빼요 연기 품는 흉내를 내며 나는 구름을 뱉고 있다고 믿죠 딸기맛 하얀 구름


횡단보도는 정형적이죠 반듯한 것들 당신이 없는 날부터 나는 반듯한 것들이 없다고 웅얼거리면 읽혀지지 않는 평론집 같아지는 나죠 구름은 어느 새 형태를 바꾸었군요


당신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


깨금발 딛으며 뛰어가고 햄버거 가게에 들러 셋트메뉴를 고르죠 감자는 싫어라고 표독스럽게 외치며 콜라를 힘껏 들이켜요 곧 먹구름이 몰려오고 싶다고 건너편 사내는 트름을 하죠 꺄르르 르

잊고 있는 것들은 죄다 잊어놓고서 그리움만 남겼나 봐요


2. 무력

일과는 모두 버렸어요 당신이란 말만 떠올리면 나는 주저앉기로 하죠 자동차는 빨리 달리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는 방향을 돌리지 않고 직선으로만 가네요 나는 곡선을 닮기로 해요 곡선을 따라 걷다보면 원점으로 돌아올 날이 있다, 고 믿죠 믿음만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인가요?


그날 너의 눈빛은 무엇을 보고 있었니?


뒤늦게 분석을 하고 후회하죠 분석 분류 통계는 사랑이란 단어에 어울리지 않아요 우울하게 노트를 찢으며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깡마른 사내 혹은 깡마른 소녀를 그리는 반백의 사내가 되고 싶어요 객관적이면서도 철저히 주관적이고 싶은

이광조의 음색은 이별에 어울린다고 말하고선 신경질적으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날도 있었죠

하루종일 당신을 담고, 당신에게 담긴 날 나는 무력해요 무력을 쓰며 무력을 내쫒으려해도 무력한


사랑은 시소 같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죠

흑백논리처럼 정갈하게 아침마다 다가와 목을 조르죠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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