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May 21. 2022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세상을 믿고

코다(2021)

지난해 개봉한 '코다'는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남우주연상 세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이를 전부 수상하며 이번 오스카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전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심사위원 대상, 감독상, 관객상, 앙상블상을 수상하며 첫 4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에릭 라튀쥬 감독의 2014년작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한국 작품 중에서는 이길보라 감독이 실제 코다로서의 경험담을 풀어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유사성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코다'의 션 헤이더 감독, 말리 매틀린 배우가 이길보라 감독과 주고받은 편지가 씨네 21에 게재되기도 했다.

제목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가 나타내듯, 주인공 루비는 청각장애인 가족의 유일한 청인이다. 이 영화는 정체성을 함축하는 '코다'라는 단어 자체를 제목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직관적인 선택은 영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기도하다. 앞서 언급한 씨네 21의 지면에서 이길보라 감독이 지적했듯, '코다'인 주인공이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꿈을 품으면서 갈등이 생기고 이를 감동적인 가족애로 버무리는 서사는 클리셰에 가깝다. '코다'는 이러한 클리셰를 정면으로 채택하고 사용한다. 가족 간의 사랑과 주인공의 성장은 기존 영화들의 서사구조와 유사하게 그려내지만, 그것을 쌓아 올리고 납득시키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농인과 코다라는 소재가 청인의 관점에서만 이용되고 향유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 우려에 대답하듯, 그들을 대상화 없이 정직하게 담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영화 곳곳에 보인다. 감독 션 헤이더는 농인이나 코다가 아니지만, 촬영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수어로 말을 하는 농인 배우가 대사를 하는 동안에는 클로즈업이나 컷 전환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나, 야간 촬영 때는 통역사의 손을 볼 수 있도록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 농인들이 가구를 배치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루비가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던 같은 학교 마일스를 따라 들어간 합창부에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루비가 버클리 음대라는 꿈을 갖게 되는 와중에,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족들은 통역사로 루비를 점점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코다'이고 음악에 재능을 보인다는 루비의 두 가지 특성이 충돌하며 영화를 이끈다. 루비가 재능을 보이는 장르가 하필 청각장애인 가족들로서는 즐기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건 아이러닉한 클리셰다.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가족들의 시점에서 소리를 완전히 제거한 콘서트 장면 연출에서도 그 지점이 잘 드러난다.

평생 가족들의 말을 밖으로 전달하며 살았던 루비는 자신이 없으면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믿는다. '농인 가족들을 통역으로 도와야 하는 나'와 '내가 없으면 곤란해지는 가족들'이 루비가 평생 겪어온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가족들 역시 루비에게 익숙하게 의존하고, 가족들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은 루비의 삶 가장 중앙에 비대하게 자리 잡았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루비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자 약자이지만, 청각장애라는 부모의 특성에 과하게 집중한 나머지 루비는 보호자의 역할을 떠안게 된다.

루비가 빠진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오만이라기보다 강한 책임감이다. 하지만 오빠 레오의 말처럼 루비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들 가족은 청각장애인 가족으로 잘 살아왔다. 거칠게 표현되었지만 사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는 잘 살았다'는 레오의 말은 당시 루비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과도한 책임감에 자기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코다'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스스로의 꿈 사이의 갈등을 상세하게 쌓아 올린 데 비해, 그 해소는 다소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다. 네가 없으면 우린 어떡하냐며 루비가 떠나는 걸 막던 부모님이 루비를 오디션장으로 데려가기까지의 심리 변화 과정은 암시적으로만 묘사된다. 가족들도 루비의 꿈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당장의 힘든 상황 사이 내적 갈등의 과정이 있었을 거라고, 관객이 추측하고 넘어갈 뿐이다. 이에 대한 약간의 의문점은 루비가 노래하는 장면으로 무마된다.

우여곡절 끝에 오디션장에 도착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러브 액츄얼리>의 ost로도 알려진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이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처럼, 조금 고전적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탁월한 선곡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코다의 모습은 농인 세계와 청인 세계 사이에 존재하며, 그래서 두 세계를 오가다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많은 세계를 보고 이해할 힘을 가진 존재다. 그런 루비가 '이제 사랑을 두 측면에서 바라본다(I've looked at love from both sides now)'는 가사를 수화와 함께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갈등의 해소를 기꺼이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뭘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