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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an 15. 2022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생각해보면 짧은 평생 1월과 2월엔 대체로 우울했다. 어딜 가든 꽃으로 화사한 봄의 아름다움도 없고, 물놀이를 하고 빙수를 먹는 게 여름만큼 짜릿하지도 않고, 가을처럼 예쁜 옷을 입고 단풍을 보러 갈 수도 없다. 12월의 설렘과 크리스마스도 없다. 1월과 2월은 내게 공식적인  '노잼 시기'였다. 겨울방학이라 외출할 일도 적고, 추워서 옷을 답답하게 싸매게 되고, 앙상한 나무와 잿빛의 풀들은 초라하게만 보였다.
  2020년의 3월, 가을학기를 휴학해서 충분히 쉬고 '노잼 시기' 1-2월도 지나 보낸 나는 어서 복학해서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고 싶었다. 봄에 예쁜 우리 학교 꽃들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시작된 코로나라는 것 때문에 개강이 자꾸만 연기됐고, 그에 따라 내 '노잼 시기'도 연장됐다. 그 당시 내 유일한 낙은 사람이 거의 없는 극장에서 롱 패딩과 마스크를 두르고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정말로 '유일한' 낙이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런 내 노잼 시기에 넘실거리는 '재미'를 선사했다. 별생각 없이 털레털레 극장에 갔다가 러닝타임 내내 웃고 상기된 마음과 달뜬 걸음으로 집에 가는 길을 재촉하던 2020년 3월 6일을 기억한다.
  영화 주인공이지만 찬실이에게는 극적인 사건도, 동화 같은 로맨스도 없다. 평생 해온 영화 일을 원치 않게 그만두고, 연애를 해볼까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아서 떠올리면 '이불 킥'을 하게 될 민망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가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찾아왔을 법한 특별한 일 같은 것도 딱히 찾아오지 않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속 찬실이는 그냥 직장에서 잘리고 썸남에게 차이며 그래도 하루하루 산다. 찬실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때로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청소를 하고, 아침 일찍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일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들이 나 같은 관객으로 하여금 괜히 한 번 울컥했다가 미소를 짓게 한다.
  새로운 행운이 찾아오지도 않고, 세간의 걱정인 듯 동정인 듯 다정한 듯 무례한 듯 경계를 아슬히 넘나드는 시선을 받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친구들과 마음속 장국영과 시를 쓰는 집주인 할머니와 함께 이리저리 치이고 고민하며 적당히 열심히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반갑다. 삶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은 질리지도 않고 자꾸 찾아온다. 어떤 예술들은 그런 순간들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전해준다. 삶을 의심하더라도 내버리지는 말라고 얇은 안전망이 되어준다. 복 많고 씩씩한 찬실이를 보면 생각은 줄이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 진다. 올해는 우리 덜 의심하고 더 많이 웃기를. 엔딩곡의 가사처럼 설령 집도 차도 사랑도 청춘도 없을지언정 뻔뻔하게 복이 많다고 우길 수는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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