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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등 뒤에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목덜미를 거머쥔 것은 서늘한 체온의 실내공기였다. 엄마가 몸을 바꾼 이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일이었다. 엄마를 담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온도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물론 홈 시스템이 온도뿐 아니라 모든 환경 요소들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있지만 엄마가 새로운 몸으로 집에 들어온 한 달 전부터는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경수의 입에서는 한숨처럼 자조가 새어나왔다.
“생명을 사람이 만든 그릇에 담다니.”
잠시 감상에 흔들리는 순간이 무색하게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자동으로 밝아지는 조명과 함께 거실 벽을 긁으며 따라왔다.
“너 무슨 생각으로 날 놔두고 간 거니? 이제 엄마가 우스워 보이니? 여자는 여자가 봐야 잘 안다니까. 그냥 휴대폰만 켜 두면 될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니? 엄마하고 있는 게 싫은 거지? 아니면 엄마가 지금 이 모양이라 그러니?”
경수는 소파까지 걸어갈 힘도 없다는 듯 거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말려 올라간 셔츠 아래로 배꼽이 드러났다. 그러자 엄마의 목소리는 금방 바뀌었다.
“그렇지. 저렇게 쏙 빠진 우리 아들 배꼽은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그야 나 닮아서 그렇겠지만, 저 무뚝뚝한 성격은 내 게 아닌데. 좀 좋은 걸 골라 닮지 그랬니?”
한손으로 윗도리를 부여잡은 경수는 힘겹게 일어나 카메라나 스피커 등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전혀 없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따라왔다.
“왜 들어가니? 네 덕분에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이 어미가 불쌍하지도 않니? 얘기 좀 하자. 경수야! 여자는 어땠니? 마음에 들었어? 하긴 좀 촌스럽게 생기긴 했더라. 그 애. 그렇다고 그렇게 일찍 헤어지면 어떻게 하니?”
침대에 누워 질끈 눈을 감고 있던 경수는 뭔가에 한 대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거실을 향해 놀란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마치 허공에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하고 연결된 개인 네트워크는 로그 오프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휴대폰도 꺼 놨는데?”
여성에게 인기 없는 배우자의 분류 중에 서른여덟 먹은 경찰공무원은 항상 상위권을 맴돈다는 사실을 엄마만 모를 리는 없었다. 그래서 여성과 만남을 주선한 이모도 옷매무새부터 언사, 식사 예절까지 꼬치꼬치 잔소리를 엮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닌 일은 아닌 것이다. 경수는 마음에 없는 자리는 서둘러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집에 들어올 작정이었다.
고즈넉한 한정식 식당에 마주앉은 서른 초반의 여자는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가꾸지 않은 듯 세련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편안한 미소로 대화를 이끌었다. 제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경수의 가슴에 팬 지난 여자의 상처에 한 치만 더 새살이 찼더라면 거부할 수 없을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본 요리가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사무실에서 급한 연락이 온 것이다. 큰 사건이 터졌으니 빨리 복귀하라는 메시지였다. 애초에 거짓으로라도 만들려 했던 상황이었지만 경수 자신이 아닌 피치 못할 현실 때문에 여자와 헤어지게 되자 진정으로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