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침주의
직장인의 13번째 월급날이라고 불리는 연말 정산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에도 아니나 다를까 제가 번 것보다 많은 돈을 펑펑 썼기에.. (최소한의 양심을 발휘해서 현금 영수증은 꼬박 꼬박 챙겼는데 체크 카드 사용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올해도 그나마 용돈 정도는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 중인데 말이죠. 원천 징수 영수증이다 표준 세액 공제다 산출 세액이다 결정 세액이다 뭔 뜻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용어가 가득하지만 그나마 간소화 서비스를 국세청 홈택스에서 제공하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에는 일일이 종이에다 수기로 숫자를 입력했을 생각을 해보니 그냥 안받고 마는것도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을 생각까지 드니깐 말이에요.
과연 올해는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국세청 사이트에 접속 해봅니다.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크롬북에선 당연히 안되겠죠. 참고로 저는 크롬북 개발자이지만 각종 개발 및 디자인 툴을 사용해야 하기에 맥북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맥북의 크롬 브라우져에서 접속해보니 일단 로그인 화면까지는 문제 없이 뜨고 필수 프로그램 설치하기 버튼을 통해 veraport라는 공인 인증 모듈로 예상되는 프로그램도 pkg파일로 제공을 하고 있네요. 평소에 절대로 쓸 일 없는 이런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들을 내 PC에 설치하는 건 참 싫은 일이지만 꾹 참고 설치를 진행 합니다. 그리고 로그인 버튼을 눌러주니..
재부팅도 해보고, 크롬의 문제인줄 알고 사파리로도 들어가보고 약 30분을 낭비한 후 다시 사이트를 잘 뒤져보니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사이트에 접속하기 전에 유의사항을 잘 읽어보지 않은 제 잘못일까요? 어차피 다른 브라우저를 지원하지 않을거면 왜 pkg파일은 뭐라도 되는 마냥 번듯하게 올려놓았으며 사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접속 자체를 차단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걸 다 떠나 왜!! 도대체 왜!!!! Internet Explorer만 사용해야 하냔 말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연말정산이란걸 해봤던 2011년에도 그닥 빠르지 않았던 내 윈도우 PC에 보안 모듈!! 안랩 V3 백신!!! 용량만 차지하고 일일이 지우기도 귀찮은 쓰잘데기 없는 Active X들을 잔뜩 설치하며 아주 화가 났지만, 설마 5년 정도 후엔 이런 귀찮음도 사라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2017년 1월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그리고 이 문제를 저만 느끼고 있는건 아니죠. 뉴스를 검색해보면 최근 일주일 사이에도..
2016년 1월에도…
2015년 1월에도…….
이렇게 기사화 되고 정책적으로도 변화를 시키겠다는 얘기를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 참 바뀌지 않네요. 한국의 PC 시장에서 크진 않지만 나름 의미있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맥북을 쓰면서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우리 크롬북에서는.. ㅠㅠ 미안하다 크롬북아 언제쯤 너도 정부 사이트도 은행 사이트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되는 날이 올까?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저에게 주어진 개발 업무 외에도 정부 과제나 정책 자금, 전시 신청 등을 하기 위해 정부 사이트들을 종종 이용하게 됩니다. 재무나 회계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거의 하루 종일 붙잡고 계셔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 나라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들을 이용할 때 부딪히는 두가지 벽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HWP 파일이죠. 이 두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유료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유료 소프트웨어라는 점입니다. (익스플로러 값은 윈도우에 포함되어 있다 쳐주세요 ㅋㅋ) 물론 유료인게 나쁜건 아니죠. 질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금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특수한 사용 상황에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건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정부 사이트는 다르죠. 최소한 정부 사이트에서는 남녀노소 국민 모두가 어느 플랫폼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특정 기업의 OS와 특정 기업의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니 정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크롬, 파이어폭스, 오페라 등의 웹브라우저와는 다르게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Microsoft에서 개발하여 MS Windows 운영체제에만 배포하는 웹 브라우저 입니다. 결국 인터넷 익스플로러 하나를 사용하기 위해 윈도우 PC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저가형 윈도우 PC에는 10만원이 넘는 윈도우 운영체제가 포함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아 설치하면 되지않느냐 하시겠지만 그건 논외로 쳐야겠지요. 그리고 각종 보안 모듈들이 깔리고 쌓이기 시작하면.. 저가형 윈도우 PC로는 택도 없죠. 그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사느니 조금 더 투자하여 쓸만한 사양의 PC를 결국 사게 됩니다.
그리고 한글 오피스. Open Office 등의 오픈 소스 생산성 프로그램과 Google Docs와 같은 어떠한 브라우저에서든 쓸 수 있는 무료 생산성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호환도 되지 않는 hwp 파일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삼성에선 보안과 자사SW란 이유로 아무도 안쓰는 훈민정음 .gul 을 쓰긴 했죠. 말 그대로 아무도 안쓰니까 유출 되어도 단순히 뚫긴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정부 각부처에서 내려오는 공문들은 모두가 보라고 있는 것이고 각종 제출용 서류들도 모두가 작성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타사의 파일 뷰어로 열면 (심지어 한컴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오피스에서도) 형식도 종종 깨지고 편집도 불가능, 게다가 모바일 버젼마저도 유료인데.. 어차피 외부와 공유하려면 또 doc로 변환해서 보낼텐데.. 전 정말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글을 쓰다보니 애꿎은 hwp로 까지 괜히 불똥이 튀었네요. 한컴 관계자 분들껜 별로 죄송합니다.
이런 기사가 있네요.
연말정산 `액티브X 전쟁` 올해 끝…내년 멀티 브라우저 지원
마치 희망적인 미래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크롬 브라우져를 지원한다 해봐야 윈도우에 깔리는 멀티 브라우저를 지원하는 새로운 보안 모듈을 개발 및 설치시키겠다는 것이지 우분투, Mac OS, Chrome OS를 지원하는건 아니겠죠. 모두가 쉽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이 편리하고 안전하고 좋은 웹과 그 웹을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운영체제들을 놔두고 왜 그 비싼 윈도우에 집착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정도로 국가에서 밀어주는 OS면 감사 할인이라도 해야하는것 아닙니까. 윈도우 PC도 없고 보안에 민감한 저는 이번 연말정산에도 친구에게 밥을 사주고 윈도우 PC를 빌려야겠습니다.
(원문 보기: 포인투랩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