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얼마 들었어요?

늘어나는 스몰토크

by LEMO

"여기 차리는 데 얼마 정도 들었어요?"

처음 이 말을 꺼낸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심야 산책을 하고 집에 올라가려다 근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리뉴얼했길래 들렀더니 매장 내부가 아직 다 채워져있지 않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초로의 남성분이 박스를 정리하고 계시길래 언제 내부가 다 채워지냐고 말을 걸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꽤 오래 지나다닌 매장이기도 하여서 창업하는데 얼마나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자금이 된다고 해서 내가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장님 뵐 일이 잘 없을 테니... 사장님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셨고, 차리고 싶냐길래 그냥 퇴사하고 나니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산책을 마치고 카페에 들렀다. 테이크아웃만 되는 작은 카페였는데 날이 추워서 매장 안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갑자기 사장님에게 또 말을 걸고 싶어졌다.(원래 말을 자주 거는 성격 아님)


"이 카페 차리는데 얼마 정도 들었어요?"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레시피값, 교육비 등등을 설명해 주셨고 혹시 차리고 싶냐고 하셨다. 퇴사하고 백수가 되니 그냥 이런 소규모 점포 창업이 궁금해져서 물었다고 했더니 인수하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웃으셨다.


어젯밤에도 산책을 다녀오는데 아파트 정문에 처음 보는 만두 트럭이 있었다. 날도 쌀쌀하고 부모님이 만두를 좋아하여 길거리에서 음식을 잘 안 사긴 하지만 만두를 사기로 했다.


만두를 찌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또 사장님에게 물었다.

"여기 설비 가격이 얼마 정도 들었어요?"

만두 사장님은 트럭값에 발전설비, 스팀도구, 식재료 및 재료보관 여건까지 꽤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본가는 의정부인데 거긴 너무 추워서 한주에 이틀은 대구에 내려와 여기서 장사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의정부에서 이런 대구 변두리를 오실 생각을 하셨는지 ㄷㄷㄷ


대화의 한 단락이 끝나자 만두 사장님도 나에게 "이거 해보시게요?"라고 하셨고 나는 이번에도 "퇴사하고 나니 이런 질문들을 자주 하게 되네요"정도로 얘기가 오갔다.


아마 번듯한 직장생활을 한창 하고 있었다면 동네 장사에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물어봤던 업종들 모두 생각보다는 창업비용이 덜 들었고 단순히 생각하면 내 계좌의 돈으로 차릴 수야 있지만 장사도 해본 사람이 하는 법. 어쩌면 나는 창업 금액은 둘째치고 사람과 대화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또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창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다들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 사장님들도 대화가 그리우셨을까?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 영상 중에 망한 상권을 돌아다니며 아저씨가 내레이션 하는 채널이 있다. 늘 하시는 대사가 카페 차리면 망한다, 뭘 하면 망한다, 건물주도 힘들다 등의 내용인데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동네도 몇 걸음만 걸으면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고 몇 년을 운영하던 술집도 간판이 내려가있다.


많은 사람들이 개나 소나 자영업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폐업을 하고 싶어서 창업을 하는 사람은 없고 손님과 싸우고 싶어서 셔터를 올리는 사장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기업, 공기업 사원은 좋은 학벌이나 경력, 시험 등의 잣대가 있어서 비난을 덜 받는 반면 대다수의 자영업자는 그저 그 길을 쉽게 선택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인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순히 손님으로서 할 법한 대화 외의 대화를 사장님들과 나눠보니 그들의 선택도 마냥 단순히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 짐작되었다. 지금 경기에 길거리 아무 개인매장에 들어가서 장사 잘 되냐고 물어보면 99%는 힘들다고 하지 않으실까?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는 아파트 상가의 거리는 사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일지도...


다들 전장에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 이러고 있는지!


+만두는 아주 맛있었다. 절반은 엄마가 드심!

매거진의 이전글정처없는 36세 백수의 요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