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지정

구름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by LEMO

그토록 우려하던 백수인 채로 설날 맞이하기가 흘러갔다.


다행이라면 그것대로 문제지만 할머니께서는 몸이 편찮으셔서 설날에 뵙지 못했고, 작은집에서도 잠시 방문하시고 금방 가셨다.

(원래 작은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모시고 오셨음)


짧은 순간이었지만 퇴사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있었다.

(후회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1월 중순부터 나는 기술학원에서 전기를 공부하고 있다. 뉴스에서만 보던 문과출신의 비참한 현실을 스스로 맞이하는 중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선은 전공을 바꾸거나 사범대를 가지 않았을 것이고, 더 되돌릴 수 있다면 아예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을 것이다.(그리고 삼양식품 주식에 몰빵!)


아무튼 의미 없는 후회는 집어치우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유용하게 써야 한다.


실업급여도 신청하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국비학원에 다니고 있으니 취업지원제도를 이용하기 위하여 고용센터에 상담도 다니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입사지원과 서류탈락의 반복은 피처링처럼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고...


오늘은 학원을 마치고 산책을 했다.

산처럼 보이지만 사실 산은 아님

숲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니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잡념들이다.


당나라 장수 적인걸은 타향살이를 하며 산에 올라 고향 쪽을 바라봤는데, 멀리 고향 방향 쪽에 뜬 구름을 보며 부모님을 생각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바로 '망운지정(望雲之情) : 구름을 보며 느낌'이다.


멍하니 하늘을 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금은 산에 올라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테니...


노을이 지고 하늘에 그라데이션이 생길 무렵 구름을 보면 부모님이든 무엇이든 아무 생각이 스쳐갈 것이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이런 사색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는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노을을 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떠오른다.


영화 버닝 中 이 장면에서 아래 대사가 나옴

극 중에서 전종서 씨는 "죽는 건 너무 무섭고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대사를 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감명 깊은 영화 대사 중 하나인데, 그만큼 공감이 되어서이지 않을까.


노을은 잠깐이면 사라진다. 매일 지나가지만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내가 노을처럼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갈 것이다.


무한한 것은 없고 그저 존재하는 한 자신의 일을 다하고 떠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안일한 희망사항을 가짐과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도 같이 하고 있다.


노을은 내일도 다시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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