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다니고 있습니다.
*글만 쓰면 허전해서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도리이나 마땅히 어울리는 사진이 없어서 공부하면서 찍어 놓았던 것을 그냥 중간중간 첨부하였습니다.
[프롤로그]
시간이 정말 빠르다.
기간제교사를 면직한 지 벌써 7.5개월 정도가 지난 것을 방금 손으로 개월을 세어 떠올렸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약 20여 곳에 입사지원서를 냈고 3곳에서 면접을 봤고 2개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2개의 자격증 필기를 합격하였다.
올해 1월 중순부터 나는 기술학원에서 전기 기능사 과정을 듣고 있으며, 최근 전기 기능사와 승강기 기능사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한국 기술등급에서 기능사는 응시의 자격이 없고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교 졸업자 수준의 레벨로 여겨지고 있다.(공업고등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했다면 전기 기능사의 필기시험이 면제됨)
즉, 나이를 웬만큼 먹은 사람이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어도 이 분야에 최소한의 지식은 있다 정도일 뿐 어마어마한 특전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문과 출신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준비기간이었고 온갖 전기 공식과 전기 기기의 구조를 빡공한 결과 다행히도 원트에 필기 합격을 했다. 겸사겸사 친 승강기 기능사도 필기 합격하여 아직 실기 시험이 남았지만 2개의 기능사 자격증 추가에 다가서게 되었다.
[문과와 이과]
작년에 면직을 앞두고 대구과학관(국립기관) 운영직 면접전형에 참석했던 기억이 났다.
교사를 하다가 왜 여기에 지원을 했냐는 질문은 뭐 충분히 예상했었는데 그것보다 가장 뇌리에 박힌 것은 한 면접관의 질문이었다. 여러 개의 과학 용어를 부르더니 이 중에 아는 것이 있냐는 질문을 했던 것이다.
하나도 없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모든 것을 아는 마냥 수업을 했지만 그 면접장에서 그 질문을 받은 나는 그냥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과 출신들이 모여있는 과학관에 지원하기에 나의 이력은 방향성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았고 그 면접관이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종의 긁힌 셈이다.
그 이후 소방안전관리 자격증 취득 후 모 학교 시설관리(행정실)직의 면접 전형까지 가면서 준비 방향성을 기술 분야로 정하게 된 것 같다.
이 또한 할 거면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준비했어야 함이 맞다. 그러나 그게 맞다고 해서 지금 손을 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기술학원에 등록하게 된 것이고...
내가 만약 자식이 생겼고 내 자식이 문과를 가겠다고 하면 나는 기를 쓰고 뜯어말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문과 출신이 순수 자신의 전공 지식을 활용하여 설 수 있는 곳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그것은 더 심화될 것이다.
자식이 일반 문과 계열을 전공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사무'라는 단어로 퉁쳐진 곳에서 좁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하거나 적성은 일단 둘째치고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걸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특히 문과 계열의 사범대학을 졸업한다면 기간제교사(이 또한 점점 하기 힘들어질 전망)를 전전하다 나처럼 되어버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모종의 사유로 현재 상황을 접어야 할 경우 새로운 판을 짤 지식 밑천은 없고 경험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자영업 혹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을 찾게 될지 모른다. 과거의 진로 결정에서 엇박자 몇 번이 나비효과가 되는 무서운 문과의 저주이다...
내가 김천에서 기간제교사를 할 무렵 겸임근무(출장) 학교의 교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며 들은 말이 있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자신도 교사 출신이긴 하지만 손주가 사범대를 가겠다고 하면 뜯어말릴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그 교감 선생님도 인문계열 출신이셨다...
이전에 썼던 글 중에도 언급하였지만 인문학은 사회에 정말 필요하긴 하다. 그리고 감동적인 글귀 한 구절은 긴 설명보다 확실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들은 없어도 없는 대로 사람은 살아갈 수는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간제교사 면접을 다닐 무렵 적지 않게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한문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였는데, 결국 이 과목은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분야라는 것...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보통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배워본 사람만이 아는 언어적 사고력 향상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솔직히 허점이 있는 답변이다.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는 것에서 '그럼 굳이?'라는 생각을 유발하기 딱 좋기 때문...
내가 만지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 현관 앞에서 켜지는 센서등, 액셀을 밟으면 알아서 올라가는 자동차의 트랜스 미션 등등은 결국 이과 능력자들의 산물이다. 결과로 보여주는 기술 앞에서 유교적 사상이니, 한자 모양이니, 마음을 울리는 글귀 한 구절 같은 것은 동떨어진 잉여분야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기술학원 생활]
한때 교단에 서 있던 내가 학생이 되어 앉아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특히 전공분야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러나 학원 교실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더 많았고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교학상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학원에 오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신 분들이 모여 있으니 여러 인생을 들어볼 수 있었고 내 또래 학생들을 보며 비슷한 고민 등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나랑 동갑이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사범대(대신 전공은 영어교육) 출신이었다. 아마 나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여기 계신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적 친밀감이 상승 중이긴 한데 그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학원을 다니며 아쉬웠던 점은 면직하고 최대한 빨리 등록할걸 하는 것이었다. 어떤 자격증이든 만약 딸 거라면 일찍 따놓는 것이 가장 좋다...
[마무리]
쓰다 보니 자기혐오나 패배주의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보이기도 하는데 약 2.5개월 동안 이과 기술 분야를 공부하며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내 감정을 서술하며 인생을 기록하는 행위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나는 매일 쓰는 전등의 스위치 배선 구조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러면서 시설관리직에 지원했던 나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고생 많이 하자.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