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파테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업무는 마당냥이의 매끼 식사를 챙겨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후지 여관의 마당냥이는 총 11마리 대식구이다.
이들은 각자 마을을 배회하다가도 자유롭게 마당을 드나들며 생활한다. 고양이들은 내가 밥을 챙겨 주는 사람이라는 걸 인식한 뒤로는 찬장에 있는 사료에 손을 올리기만 해도 창문에 붙어 미야옹- 미야옹- 높은 하이톤의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그 모습이 꼬마들이 합창하는 것처럼 무척 귀여워 흐뭇한 표정으로 잠시 지켜보다가 바깥으로 나간다.
주방과 이어진 뒷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바닥에 일열로 사료를 쭉- 부어주면 제각기 마당에서 뒹굴거리던 고양이들이 먹이 주위로 옹기종기 모인다. 찹찹- 맛있게 먹이를 먹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양이들 사이에 가죽밖에 없는 고양이 빼빼는 무리에 끼지 못하고 늘 서성거린다. 그래서 다른 고양이들의 눈을 피해 빼빼를 저 멀리로 따로 데려와 먹이를 챙겨줄 수밖에 없다. 뒤늦게 사모님으로부터 빼빼가 이 오동통한 고양이들의 어미 고양이였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는 어찌나 놀랐는지.
"매니저님 -"이라는 호칭은 언제 들어도 어색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책임감을 잔뜩 실어준다. 튀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 속에 모습을 감추려는 나의 본성을 거스르고 싹싹한 사람으로 휘리릭 탈바꿈하게 만든다.
물론 내 선에서 싹싹한 것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싹싹함은 거리가 있을 거다. 어쩌면 싹싹함의 평균치에서 한참 못 미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잦은 후회나 자책을 하는 나조차 후지 여관 매니저 일 만큼은 미련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후지 여관을 찾는 손님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쓸고 닦았고, 용기 내어 먼저 다가가 무언가 필요한 게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응접실에 흐트러진 물건들을 착착 정리할 때, 새로운 손님이 왔을 때 슬그머니 다가가 매니저라고 소개할 때, 막 세탁을 마친 이불보를 탈탈 털어 뒷마당에 널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는 나를 의식하게 되면 기분이 묘해졌다. 그럴 땐 이게 정말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매니저 역할을 꽤나 잘해 내었고 적성에도 맞았다.
항상 떠나는 입장에서 떠나보내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이상하다. 이들이 떠나는 순간 후지 여관은 추억이 된다. 동시에 나 역시 겹겹이 쌓이는 추억 속 아주 작은 존재로 남아있겠지.
나는 어떤 매니저로 기억될까? 어느 날 문득 그들의 남미 여행을 떠올려 볼 때, 그러다 칼라파테의 후지 여관이 떠오른다면 '아, 거기 매니저분이 참 친절했었단 말이지'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는데, 역시나 이건 엄청나게 큰 욕심인 것 같다.
비록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후지 여관만은 따뜻하게 기억해주길 바라는 정도로만 욕심을 내야겠다.
매니저 공고문에 있던 글 그대로 칼라파테 겨울은 정말로 평화로웠다. 마을은 쓸쓸하고 황량했지만 후지 여관 안에서 만큼은 사람들과 고양이들 속에 섞여 포근하게 쉴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을 수 있던걸 진심으로 행운으로 생각한다. 내가 손님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게 도운 게 아니라 오히려 오랜 배낭여행으로 지친 내 마음을 기대고 아주 푹 쉬었다고 생각할 만큼 감사했던 나날들이었다.
어떻게 해서 나라는 사람이 호스텔 매니저 역할을 잘할 수 있었을까?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그건 후지 여관의 따스한 분위기와 꼭 맞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게 힘들 때면 종종 생각한다. 후지 여관 매니저 시절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렇게 된다면 밀려 들어오고 떠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기꺼이 반기고 배웅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삶은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깃털처럼 가볍고 평온할 수 있을 거다. 아마 그렇게 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겠지.
후지 여관 매니저 시절은 추운 겨울 포근한 침구에 몸을 맡기고 스르르 잠들었을 때 꿨을 법한 아주 달콤한 꿈처럼 느껴진다.
꿈결처럼 내 마음은 늘 후지 여관을 그리워하고 애정 하면서 그곳에 닿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