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릴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은 없다. 거의 없다. 아니 방금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니 문득문득 떠오르는 몇몇 단편적인 모습이 있을 뿐이다. 그 마저도 마음에 안 드는 장면뿐.
‘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나? ‘
그때의 나는 정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평범함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였다.
‘아, 나는 나를 싫어했구나. 그래서 그때 내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구나.’
저기 유리창 너머 까만 무리 속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학생. 그게 바로 나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올까 봐, 그에 대한 적절한 답을 골라내지 못할까 봐 늘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그 아이의 시선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기 많은 반짝반짝 예쁘고 멋진 친구, 선생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범생 친구,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화력 좋은 친구에게 향했다. 그들을 우러러볼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곤 했다.
“나는 평생 저 친구처럼 사랑받지 못할 거야.”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스스로 어두운 동굴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어느 순간 눈 깜짝할 새 그 동굴 속에 살아가게 된 건 아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던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어둠 속을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리게 될 거라는 걸. 작은 소녀가 성인이 되고 여러 인생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야 겨우 벗어났다.
왜 그런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갔을까?
분명 어둡고 무서웠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세상 밖에 안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 그곳으로 들어가는 외에 선택지는 없이 느껴졌다. 그 습한 공기가 따뜻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나를 잡아주는 ‘단 한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때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 자체로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자신은 부족하다고, 보잘것없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와 상담을 한다고 해도 그 동굴을 빠져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그 동굴을 언젠가 자신의 두 발로 씩씩하게 나오게 될 때, 그 힘든 여정을 되돌아봤을 때 그 긴 동굴 속 시간이 외롭지만은 않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에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졌다면 나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아도 아주 기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