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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Jul 11. 2024

나의 학창 시절


 학교에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릴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은 없다. 거의 없다. 아니 방금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니 문득문득 떠오르는 몇몇 단편적인 모습이 있을 뿐이다. 그 마저도 마음에 안 드는 장면뿐.


‘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나? ‘


 그때의 나는 정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평범함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였다.


‘아, 나는 나를 싫어했구나. 그래서 그때 내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구나.’


 저기 유리창 너머 까만 무리 속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학생. 그게 바로 나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올까 봐, 그에 대한 적절한 답을 골라내지 못할까 봐 늘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그 아이의 시선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기 많은 반짝반짝 예쁘고 멋진 친구, 선생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범생 친구,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화력 좋은 친구에게 향했다. 그들을 우러러볼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곤 했다.


“나는 평생 저 친구처럼 사랑받지 못할 거야.”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스스로 어두운 동굴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어느 순간 눈 깜짝할 새 그 동굴 속에 살아가게 된 건 아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던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어둠 속을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리게 될 거라는 걸. 작은 소녀가 성인이 되고 여러 인생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야 겨우 벗어났다.


왜 그런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갔을까?

분명 어둡고 무서웠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세상 밖에 안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 그곳으로 들어가는 외에 선택지는 없이 느껴졌다.  그 습한 공기가 따뜻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나를 잡아주는 ‘단 한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그때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 자체로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자신은 부족하다고, 보잘것없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와 상담을 한다고 해도 그 동굴을 빠져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그 동굴을 언젠가 자신의 두 발로 씩씩하게 나오게 될 때, 그 힘든 여정을 되돌아봤을 때 그 긴 동굴 속 시간이 외롭지만은 않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에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졌다면 나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아도 아주 기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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