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았다면 운전을 잘하던 못하던 꽉 잡고 목적지까지 달려가야 한다. 물론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선택지에 넣지 않기로 하자.
여행 일정 변경이 결정된 이후 2주의 유예기간이 있었으나 그 사이에 어떤 특별한 걸 하진 않았다. 그저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일상을 즐겼다. 평소처럼 영어 학원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녁 장거리를 보고 요리를 하는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학원 프런트의 직원과는 여전히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선생님 말로는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겁내 한다고 했다. 우락부락한 남미 청년이 나를 겁낸다니. 반대가 더 납득되지 않을까? 학원을 마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로 나와 거리낌 없이 휘젓고 다니다 보니 정말 떠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인 이후엔 요동치던 마음도 금방 고요해졌다. 호들갑 떨었던 게 민망해질 정도로 차분하다. 이왕 가기로 결정했으니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렸다. 사진으로만 보고 꿈만 꾸던 여행지에 직접 가보고 또 다양한 나라에서 온 배낭 여행자들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하고 고대했다. 어디선가 부르릉-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장 먼저 머리를 짧게 커트를 하러 갔다. 결의를 다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내 앞을 가로막는 건 비단 치렁치렁한 긴 머리뿐은 아니겠지만.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어깨에 닿지 않는 커트머리는 오랜만이다. 머리를 감고 나서 수건을 잡고 휙휙 털어 말리기만 하면 되니 아주 편하다. 짧은 머리 덕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샤워 후 대강 머리를 말리고 침대로 쓰러져도 문제없었다.
다음으로 무엇을 할지는 분명했다. 여행 루트를 짜는 것이다. 더불어 숙소와 교통편까지 셋업해 두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영 손에 잡히질 않았다. 사람들 말로는 남미 배낭여행은 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는데 천하태평이다. 매 번 미루다 보니 여행날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아차’ 싶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덮어버렸다. 이미 남미에 있는데 무얼 더 준비해야 할까. 나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준비뿐이었다.
머릿속엔 딱 두 가지만 입력되어 있다. 하나는 7월 말까지 후지 여관에 도착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가능한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에게나 어울린다. 자고로 배낭여행자는 몸이 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육로를 강하게 고집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커다란 대륙을 이동하면서 브라질 북부로 이동하는 비행기와 후지 여관을 벗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버스를 이용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에기마는 남미에는 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다며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에게는 내가 십 대로 보일 수 있어 더욱 걱정된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사려 깊고 따뜻한 마음이 당시에는 내 앞길을 훼방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눈앞의 새로운 도전에 몰두한 에너지가 끓는 젊은이였다. 결코 마음이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말라며 위로와 감사를 전하기보다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딱 잘라버렸다.
‘그건 절대 안 돼요. 부모님도 나를 말리지 못했어요. 나는 이미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이 말을 번역기를 쓰면서 까지 해야 했을까. 에기마는 본인도 이미 잘 알고 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무사히 잘 가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줬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카에를 떠났다.
후지 여관으로 가는 3달 반 동안 온전히 내 힘으로 여행을 하겠다 다짐하면서.
내 몸속 어딘가에서 어떤 추동이 발현하면 브레이크를 밟아라는 신호를 무시한 채 되려 액셀을 밟아버린다. 천천히 주행하며 부드럽게 목적지에 진입하면 좋겠지만 내 마음은 그런 방식으론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질주는 때론 나 자신을 거침없이 몰아붙이고 상대방을 못 보고 지나치게 만든다. 뭐든 제멋대로 하는 뾰족한 나는 지금은 마모가 되었을까? 적당한 속도를 찾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