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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Dec 29. 2020

도움을 받는다는 것

 보통 인간관계에서 도움을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나뉜다면 나는 언제나 후자였다. 그것을 좋게 포장하자면 내 주변에 호의적이고 친절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나는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반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쓴 롤링페이퍼에 한 친구가 남긴 말을 잊을 수 없다. '어리숙하다' 그 말은 사악한 마녀의 저주같이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것이 자각될 때마다 허를 찔리고 간파당한 것 같았다. 내가 어리숙하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어떤 일이든지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내 성격의 일부로 스며든 것이다.

 이 생각의 뿌리가 어디서 나온 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의 나는 편안함과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 결국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움보다 빚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빚은 계속 쌓여만 가는데 그것을 갚을 능력이 나에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는 도움을 받기보다는 최대한 내 힘으로 해내리라 마음을 먹었으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첫날부터 도움을 받았다. 바네사가 없었다면 그 많은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혼자였다면 시행착오를 겪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해낼 순 있었겠지만 이렇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으면 먼저 나서지 않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것도 일종의 습관일 수도 있겠다. 결국 이게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의지도, 상대방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흐려진다.




 첫날은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고 합리화했다. 브라질은 나에겐 생소한 곳이니까. 어제 바네사와 마카에를 돌아다니며 내가 갈만한 곳들을 얼추 알아뒀으니 그녀가 없는 동안에는 내 힘으로 브라질 생활을 잘 해내리라 결심했다.

 오늘 4시에 바네사가 일을 하러 떠난다. 그녀는 혼자 남게 될 나를 걱정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바네사가 없으면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됐다.

 그런데 갑자기 바네사가 떠나기 전에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를 따라 위층에 올라가니 50대의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거실 안쪽 안마의자에는 60대로 보이는 흰머리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자 환히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알고 보니 바네사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고,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말해 둔 것이다.

 여자분의 이름은 베지, 남자분의 이름은 에기마였다. 처음에는 부부로 생각했는데 그냥 친구 사이고 집을 셰어할 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형태의 가구라 놀랐지만 티를 내면 실례라 생각해서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처음 날 볼 때부터 관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분들의 도움을 아주 많이 받게 될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바네사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나를 부탁하며 떠났다.

 베지는 인터넷 번역기를 사용하여 내가 영어로 말한 걸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이해했다. 그녀가 다시 에기마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우리 세 사람은 소통할 수 있었다. 주로 우리의 대화는 베지와 에기마가 나에게도  무언가가 필요한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마치 나에게 있을 어떠한 불편함도 놓치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하는 듯했다

 우리는 바네사가 없는 동안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만났다. 매일 점심에 초대해 주어 같이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밥을 먹기도 했다. 에기마는 당시 페스코 베지테리언(채식을 하면서 유제품, 가금류의 알, 어류는 먹는 채식주의자)인 나를 배려하여 매일 해산물 요리를 해주었고 특히 생선요리에서는 친절히 뼈를 발라주었다. 내가 맛있게 먹었던 것은 저녁에 먹을 수 있도록 여분으로 포장까지 해줬다. 그들은 언제든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고 뭐든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는데 분명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터라 바네사가 없는 동안에도 나는 혼자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익숙한 도움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곳은 브라질이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일은 혼자 하기도 했지만. 예를 들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카페에 가는 등등의 일들 말이다. 고작 이걸로 홀로서기를 했다고 말하기엔 민망해진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이 먼 곳까지 왔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라는 생각에 풀이 죽어버렸다. 왜 나는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도움을 뿌리치는 것이 실례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 역시 핑계일 뿐이다. 나는 한국에 있었을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본격적인 배낭여행을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몇 달 뒤에 나는 지금과는 달라질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이 나의 본질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감사한 마음에 직접 만든 호밀빵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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