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더 좋은 질문 712
지구에 단 50명만 남아 있다. 생존을 위해 각 사람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두 눈으로 확인했다. 누가 목이라도 조른 듯 거친 호흡을 내뱉다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재앙이 멈춘 한 달 뒤 남은 생존자들은 서울로 모였다.
서울에는 우리가 죽기 전까지 다쓰지도 못할 만큼 물건들이 넘친다. 잠자고 편히 쉴 수 있는 아파트,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입을 수 있는 옷과 신발 등. 발전기는 자동화되어 있는 건지 전기와 가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 끊길지 모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겠지.
사람들이 북적이던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영화에서 봤던 좀비가 휩쓸고 간 도시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또 언제 누가 증상을 보이며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모여 살기로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건강을 챙겨주고 혹시라도 누군가 죽는다면 장례를 잘 치러주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각자 직업에 따라 역할을 나누었다. 나는 생존자들의 상담을 맡게 되었다. 계속 학교에서 아이들만 상담을 했었는데 성인은 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은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성인, 청소년 나눠서 상담을 공부한 게 아니니까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나 말고 달리 할 사람이 없으니.
하지만 이런 재앙에 상담사가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종교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만 하다가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 모두는 가까이 있던 사람의 죽음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어떤 감정을 표출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나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역할은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책임도 지지 못할 희망고문을 할 수 없다. 그저 꾹꾹 참을 수밖에 없던, 입 밖으로 내밀면 무너 저 버릴지도 모르는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사실 나의 능력치로는 버거운 일이다. 평소에도 이런 무거운 책임을 견딜 힘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늘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나보다 훨씬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상담 선생님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 이외에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저 참고 견디며 하루에 세명 씩 꾸준히 상담을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인터넷이 되니 꾸준히 상담을 공부할 수 있었고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