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심의 관심'은 이해관계나 유용성 등을 떠난 관시라고 한다. 그저 미적 관심, 멋있게 만들고 싶다는 관심, 시를 읽고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과 같은 직접적 이득이나 유용성과 무관한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관념을 비판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사심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겐) 그리고 과연 사심이 없는 것만이 고귀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심 없이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순수한 예술로서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나아가 그들의 마음에 와닿길 바라는 욕심도 생겨버리니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내게서 나온 글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통로이다. 나를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거다. 그것이 반드시 ‘사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탈리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집착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나의 넘치는 사심을 다스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덩이와 얼음조각을 삼키고 있어야 할까?
사심을 가지면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