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집착하며 거울 앞을 떠나지 않던 모델이 어느 날 얼굴이 망가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녀는 단연코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이나 쇼핑몰의 식당가에서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고개를 돌려 그녀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녀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을 붙잡고 그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그 학생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라고. 단풍처럼 붉은 웨이브 머리가 어깨 넘어 넘실거리고, 눈처럼 깨끗한 피부에 선홍빛으로 상기된 볼이 생기를 더해준다. 길고 진한 속눈썹이 짙은 고동색 눈동자를 한층 깊어 보이게 만든다. 고개를 숙이면 우수에 찬 듯한 고고하다가, 빤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땐 신비스러운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녀가 웃을 때면 세상의 모든 따뜻한 온기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하다. 그녀는 일찍이 모델로 캐스팅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학업까지 충실히 하는 모든 이가 선망하는 사람이었다. 젊고 건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녀에게는 어떤 그림자도 없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학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녀와 늘 함께 다니던 동기들도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분명 메신저를 보면 읽었다는 표시가 있는데 되돌아오는 답은 없다. 시간이 점점 지나자 소문이 무성해진다. 처음엔 해외에 교환학생을 갔다는 이야기, 재벌 3세와 결혼을 해서 신부수업이 한창이라는 이야기 정도의 가십으로 시작되었다.하지만 그 소문은 입과 입을 전해지면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녀가 이제껏 명품으로 치장하느라 빚을 많이 져서 해외로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 질 안 좋은 대부업계 회장의 두 번째인지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는 지저분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걱정과 염려를 가장한 여러 소문들로 캠퍼스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사가 시험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게 되자 소문은 점차 사그라든다. 하지만 종종 도서관 휴게실을 지나가다 보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 그녀는 임신을 했다. 그녀는 멀리 떠나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바뀌었던 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무사히 하루가 끝났구나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어둠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곁으로 오는걸 그녀가 알 도리가 없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바 없이 늘 걷던 거리를 똑같은 보폭으로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만취상태의 운전자가 그녀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박는 건 한 순간이었다. 차에 부딪힌 그녀의 가녀린 몸은 크게 붕 떠서 떨어지면서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 운전자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당황한 나머지 자리를 떠나려 한 탓에 가여운 그녀는 바퀴에 걸린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이 시멘트 바닥에 심하게 긁히고 말았다.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있던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의사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이곳은 지옥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가 아름다운 외모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낯선 사람의 호의부터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모델이라는 직업까지 전부 다. 병원의 창밖을 내려다보니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바라본다. 연말 분위기로 모두 한껏 들떠 있다. 이들 사이에서 당당한 걸음걸이로 걷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앞으로는 그녀가 숨 쉬듯 당연히 누렸던 삶을 살아갈 수 없으며,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돼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할까? 앞으로 할 수 있는 건 절망과 체념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