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브런치 101번째 글)
최근에 집중적으로 AI에 관한 글들을 쓰겠다고 선언한 뒤로 주 1회씩 관련 주제에 대해서 글을 지어 나가고 있었는데, 한정된 시간에 그에 관한 글들만 정제하다 보니 나 자신과 삶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놓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주제에 대한 관점들도 ‘나’를 표현하지만, 사실 그 외의 것들에 대한 관점들도 모두 '나'이므로 놓치지 말고 그냥 지금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다. 점점 더 브런치가 내 글을 노출해 주는 숫자보다 내가 오히려 외부 플랫폼에서 브런치에 끌어다 주는 트래픽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몇 차례에 걸쳐 수치로 확인하고는 플랫폼의 독립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독립 시나리오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궁금한 점은 "내가 혼자서 지속적으로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을까?"였다. 정기적으로 뉴스레터의 형식을 가져간다고 할 경우 최소 격주에 1회, 시작하면 적어도 3년 이상을 가져간다는 목표라면 “최소한” 78개의 글감이 있어야만 한다. "갑자기 더 쓸 얘기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간 여유가 될 때에 생각이 나면 가끔 썼던 브런치의 글들을 세어보니 벌써 딱 100개다. 어, 그렇다면 앞으로 100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브루잉 커피 원데이 클래스
집 앞에 (또) 새로 생긴 커피숍을 우연히 한번 방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커피 원데이 클래스를 한다 하여 신청해 보았다. 솔직히 바리스타 맛보기 클래스도 아니고, "브루잉 커피만 장장 두 시간이나 들여 별도 클래스 할 내용이 있을까?"하며 나이브한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뭐든지 배우는 것을 좋아하니까. 커피도 좀 더 알고 마시면 왠지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의 그 애초 의문이 얼마나 무식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냥 어떤 커피에 물을 끓여서 필터로 한번 내리는 것'이 브루잉이 아니었다. '어떤 원두를 어떤 굵기로 갈아서, 정확히 몇 도로 맞춘 정수 물을 가지고 커피와의 농도 황금 비율을 정하여, 몇 번에 물을 얼만큼씩 나누어서 몇 분 만에 내리는지'가 바로 브루잉이었다. 김치처럼 직접 버무리는 손맛이 베일 리가 없는 공정인데도, 같은 재료와 수치들로 내리는데도 희한하게 사람에 따라 맛이 달랐다.
#나는 커피를 타고나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변수만 차이가 나도 커피의 맛이 엄청 달라진다고는 하는데, (그 자리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주 미세한 차이만이 정말 겨우 느껴질 뿐이었다. 같은 원두로 10개의 다른 버전의 브루잉 커피를 집중적으로 비교하는데, 아무리 해도 내게는 아리송하게 다른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역시 몹시 다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와인을 표현하는 각종 미사여구처럼 커피에도 묘사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형용사들이 빼곡히 있었는데, 나는 차마 어떤 것을 갖다 붙여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와인도 어렵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런 '표현' 부분이었는데, 커피에 비하면 와인은 정말 내가 자신 있게 뚜렷한 특징들을 뽑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잘 된 브루된 커피'와 '그렇지 않은 커피'를 언젠가는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감각도 연습하면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늘겠지? 하지만 어쩌면, 그 어떤 감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인풋을 들여야만 단련할 수 있는 영역이 내게는 커피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 어떤 분야는 특별히 더 많은 것이 투여되어야만 겨우 조금 얻을 수 있다.
#나는 행동이 굼뜨고, 몸으로 익히는 데 오래 걸린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모든 것에 굼뜬 아이. 오래 달리기는 1등 할 수 있어도, 100미터 달리기는 거의 매번 꼴찌 하는 아이. 머리로 배우는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몸으로 익히는 데에는 평균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아이. 그 아이는 역시 나이가 40 넘어도 바뀌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는 실습을 세 번 하는 동안 나는 늘 꼴찌였고, 늘 시간에 맞춰서 커피를 다 내리는 데에 실패했다. 그리고 물을 일정한 속도로 스피디하고 정교하게 내리는 것이, 머리로는 너무 알겠는데 몸으로는 왜 그리 어려운지. 역시 이론과 실제는 너무도 다르다. 앞으로 AI가 그 어떤 인간보다 빠른 생각과 계산을 해주면, 그걸 활용하여 실제로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차별화된 경쟁력일 텐데, 나는 그럼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커피를 내리는 6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정서적으로는 민첩도가 평균보다는 이상인 편인데 물리적으로는 상당히 이하라서, 그래서 그 괴리가 더 크고 괴롭게 느껴지는 것이 혹시 내 인생의 과제는 아닌지 곱씹기도 했다.
#전문가는 즐기면서 일관적인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
내가 계속 속도를 못 맞추는 바람에 수업의 예정된 두 시간을 단체로 훌쩍 넘기게 되는 민폐를 저지르고는, 마지막 블라인드 테스트에도 약간 자포자기 심정으로 최종 나의 브루 커피를 헐레벌떡 제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커피가 안 맞는 사람이니 오늘 클래스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시간 낭비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스타 두 분과 일반인 일일 수강생 나포함 4명이 참여한 블라인드 테스트의 최종 승자는 바로 압도적으로 나였다? 모두들 놀랐고 나도 놀랐다. 내 커피가 우연히 한 번 바리스타님의 커피보다 맛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내가 소질이 있다거나 전문가라며 결코 한 순간도 우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정의한 ‘전문가’란 어쩌다 한번 엄청난 퍼포먼스를 내고 그다음의 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예측 가능한 탁월함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어야 앞으로 더 큰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그 어떤 요건도 충족하지 않으면서, 그냥 뒷걸음치다 우연히 하나 얻어걸린 사람일 뿐이었다.
오늘 나는 브루잉 커피에 대해서 배우면서 나에 대해서 더 배웠다. 까먹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하며 배운 것 외에, 새롭게 배운 것이 ‘생각보다 나는 커피에 소질을 타고나지는 않았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사실이라니. 그래도 또 그래서 좋았다. '잘하는 것', '앞으로 더 투자할 것'을 아는 것만큼, '잘하지 못하거나, 같은 레벨의 인풋을 들여서 상대적인 경쟁력이 뛰어나지는 않을 것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인생에서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꼴랑 두 시간짜리 수업 한번 듣고 그렇게 속단하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몸이 아닌 머리로 하는 일인 판단력은 빠른 편이다. 아닐 것 같으면 최대한 빨리 접고, ’더 잘하거나 더 재미있을 것을 찾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아는 부분이다. 세상에 얼마나 배울 것과 할 것이 많은데 말이다.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증명하겠다고 일일이 모든 것에 달려들며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다.
그나저나 야밤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 밤도 다 잤다. 인생은 짧은 것 맞는데, 오늘 밤은 꽤나 길겠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 맞다.
(‘새벽 두 시의 갬성’으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