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가는 한 인간의 성장 기록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존재'라는 것이 내 삶에 들어온 이래, 아기 시절에는 한 달 단위의 성장 기록을 남겼었고, 유년기가 되면서는 6개월 단위로 기억하고 싶은 여정을 남기고 있다. 그저께 만 5세 생일을 맞이한 우리 아들의 만 4세 반에서 5세 사이 간직하고 싶은 모습의 조각들을 추려 본다. 감사히도 우리 아들은 또래에 맞게 잘 크고 있는 것 같고, 돌이켜보면 크게 이런 특징들이 발현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1. 사랑의 마음이 깊고 또 넓어지다.
아기 때는 (당연하게도) 사고가 본능적이고 일차적인 욕구에 가까운 것들이 대분분이어서 자기중심적인 측면이 더 많은데, 이제는 그 관심과 관점의 영역이 외부까지도 꽤 가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왜 그렇게 골랐냐고 물어보면 “내가 이 분홍색 장미로 골라온 건, 왠지 이걸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았어.”, “엄마는 고양이 좋아해? 그럼 나도 고양이 좋아할래.” 어디서든 자기주장이 강하고, 늘 주관이 뚜렷한 아이인데, 간혹 취향적으로 뭔가를 고르는 때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게 좋아.” 우리 남편도 종종 “나는 딱히 원하는 것 없어. 네가 좋아하는 게 나도 좋아.”하는데 우리 아들에게도 그런 느낌일까.
“엄마, 오늘 우리 무지개 양말 신자~!” 우리 아들은 무지개 컬러를 좋아한다. 어쩌다 무지개무늬의 양말을 신는 날은 특별한 날이 되는데, 그날은 엄마도 같이 무지개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남편과 연애 시절 커플룩을 해본 적도 없었고, 많은 엄마들의 로망처럼 아기와의 커플룩을 신경 써서 기획해 본 적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살가운 문과보다 무뚝뚝한 이과 스타일, MBTI ST이다.) 그런데 이 꼬마는 내가 어디서 한번 경품으로 얻어온 양말이 무지개 비슷해 보이는 현란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기와 같은 날 신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 좋아하는 무지개 양말임에도 엄마가 세탁을 안 해서 같이 못 신는 날에는 본인도 안 신겠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과 더 자주 무지개 양말 커플룩을 하면서 특별히 즐거운 날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 진짜로 “무지개 양말”을 검색해 세 족을 추가 주문했다. 이 아이는 수시로 “엄마 엄마~!”하고 부르고는 “왜?” 하면 “사랑해~~^^”한다. 어디서 이렇게 회수분처럼 매번 사랑이 솟아날까.
2. 사회성과 눈치가 더 발달하다.
"엄마, 저기 지금 TV에 나오는 여자랑 엄마랑 중에 누가 더 이쁜지 나보고 한번 물어봐." “응? 왜??” “아니 그냥~~ 한번 물어봐.” “저기 여자랑 엄마 중에 누가 더 예뻐?”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엄마~!^^“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말을 시킨 적도 없고, 화면에 나오고 있는 여자는 무려 배수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뭔가 원하는 것이나 조르는 것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도, 그냥 본인이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귀여우면서 웃겼다. 사실 엄마는 진실도 아닌 것으로 아첨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아직 비밀로 하기로 했다.
“엄마, 오늘 근데 태권도 관장님이 셔틀버스 내려주면서, 나보고 ‘너 얼굴 너무 잘생겨서, 나랑 바꾸자.’고 했어. 그것도 세 번이나.“ 아이가 그 말을 듣고 뭐라고 대답했을지, 아니면 듣고 아무 대꾸도 안 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농담을 듣는 상황을 같이 겪은 적이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따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았으며, 무엇보다 나라도 뭐라 답해야 할지 잘 몰라서 멋쩍게 웃기나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냐고 물어봤더니 무려 ”아닙니다~“라고 했다는 게 아닌가? 한 달 다니면서 익힌 태권도라는 맥락에서의 절제된 말투로, 겸양의 반응을 아이가 보였다는 것이다. 이 아이의 눈치와 사회성은 어쩜 이미 나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생일 되면 사주기로 했던 장난감을 마트에서 슬쩍 카트에 넣고는 걸리니까 넉살 좋게 헤헤 웃으면서 “이왕 고른 거니, 그냥 오늘이 생일이라고 생각하자~!”하는 아이다.
3. 단단한 인간으로 영글어가다.
나와 아이가 둘만 큰 이마트에 간 적이 있는데, 계산대 줄에서 오렌지 하나가 썩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과일 코너까지 뛰어가도 왕복 3~4분은 걸릴 텐데 카트에 타고 있는 아이한테 잠시 혼자 다녀와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 왕복을 했건만 벌써 계산대에 내 차례가 도달해 있었다. 그런데 카트를 타고 있는 아이가 이미 물건도 다 빼서 점원이 상품을 바코드로 다 찍게 하고, 이미 계산대를 넘어가서 돈 지불하는 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허겁지겁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아이에게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선생님(점원)한테 “엄마, 오렌지 바꾸러 갔어요.”하고 말하고 물건을 다 빼서 올려놓았단다. 그러고는 계속 카트에 탄 채, 마치 휠체어를 이동시키듯이 거기 있는 바를 잡고 카트 바퀴를 낑낑 스스로 굴려서 반대편으로 넘어갔단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이와 롯데월드에 처음으로 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은 통에 아이가 타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닫혀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세 개 층이나 계속 문이 열리면서 내려갔다가 겨우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그 북새통에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엉엉 울면서도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큰 문제는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트라우마 같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한편으로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보자마자 울음을 그쳤고 “어떤 여자 선생님이 와서 왜 울고 있냐고 해서 ‘엄마 잃어버렸어요’ 했어.”라고 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씩씩하게 했다. 그러고 멀쩡히 밥 먹고, 원하던 아이스크림 먹으며 할 것 다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자려고 누우니 아이가 으엉엉 울면서 말한다. “아까 엄마 아빠 잃어버린 줄 알고 너무너무 무서웠어.” 며칠 밤마다 잘 때 누우면 이야기하더니, 이후 더 좋은 기억들로 조금씩 덮인 것인지 더 이상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4.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나다.
아이는 만 3세부터 혼자 글을 하나씩 읽기 시작해서는 4세가 되니 뜻도 모르는 신문도 줄줄 읽어대고, 글을 아니까 음성 버튼 하나만 눌러서 카톡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다 읽을 수 있으면서도, 아무리 늦어도 밤마다 나에게 꼭 책 한 권씩은 가져와 읽어달라고 떼쓴다. 마치 자기 전에는 꼭 양치질을 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수행해야 잠을 잘 수 있는 루틴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본인이 만든 세부 루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엄마가 읽어 주기 전에 꼭 본인이 먼저 스스로 한번 음미하면서 천천히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다. 그럴 거면 그냥 혼자만 읽고 자거나, 아니면 늦었으니 내가 그냥 빨리 한 번만 읽어주고 바로 자자고 해도 절대 사수해야 하는 본인의 루틴이다. 주입식 교육을 선호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먼저 들이는 아이로 쭉 자라나길 바라본다. 본인이 만든 표현도 있는데, 어느 날은 “엄마, 발을 쥐가 물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다. 발에 쥐가 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표현이 틀렸다고 먼저 말하기보다는 ‘그렇구나.. 많이 아파?’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쥐가 ‘문다’기보다는 ‘난다’고 표현한다고 참고로 알려는 주었다.
아침에 정시 출근을 안 하게 되면서부터는 매일 아침 직접 등원을 시켜주었는데, 유치원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꼭 챙기는 스스로 만들어둔 루틴이 있었다. “엄마 엄마, 큰 하트, 작은 하트, 손가락 하트, 이렇게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그다음에 들어가는 거야” 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하나도 건너뛸 수 없는 스텝들이 무려 5단계였다. 그렇게 아침마다 뜨겁게 사랑이 넘치는 여름과 가을을 보냈는데, 겨울이 되면서부터 이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친구랑 빨리 놀겠다며 뛰어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질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그동안 부족하다 느꼈을지 모르는, 세상 바쁘던 워킹맘 엄마와의 사랑 나눔이 이제는 다 채워진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 시원섭섭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이제 아이는 점점 더 나에게서 친구들과의 세계 쪽으로 멀어져 가겠지. 벌써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아이가 만 2세가 지날 때까지도 종종 '아니, 내게도 자식이 있다니!' 하며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한 느낌이었고, 누구누구 ‘맘’이라는 표현과 "엄마가 XX 해줄게~"라는 말을 스스로 할 때마다 그 호칭이 어색했었다. (참고로 나는 그전까지 평생 자식에 대한 로망 없이 거의 만 40년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아이가 내 몸의 일부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아마도 인생에서 결코 떼어낼 수가 없을 조각처럼 박혀버렸다. 유치원에서 만 4세 과정을 수료했다면서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줄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간의 힘듦에 대한 주마등 같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고 (나는 사실 육아가 빡세게 살아온 인생의 다른 과업들 대비 유난할 정도로 더 힘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을 볼 때의 벅찬 느낌’이었다. 훌쩍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엄마들이 똑같이 소리 없이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