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 년에 걸친 나의 X5 년 회고

일년 말고 더 긴 히스토리

by 투명물고기

2025년이 진짜 딱 하루 남았다.

아마도 내년은 분명 올해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흘러갈 것임을 알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은 우연이라 하기엔 신기하리만치 늘 ‘XXX5년’을 변곡점으로 큰 변화와 도전들이 있어왔다는 패턴을 발견하였다.


1) 1985년


엄마가 셋째 동생을 임신하면서, 동생 돌봄부터 해외 오지 주재원으로 나가있는 아빠 대신 엄마의 동반자 역할 등 많은 임무가 내게 주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의 사진은 거의 감당하기 힘든 동생(들)을 케어하느라 대부분 버겁고 찌든 표정으로 바뀌어있다는 것을 이번에 여동생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반강제로 급격히 일찍 철든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도 뭘 사달라고 떼를 써본 기억이 거의 없고, 세뱃돈을 받으면 내 것을 사기보다 책 속에 고이 끼워두었다가 가족 생일, 어버이날, 부모님 결혼기념일 등 연간 행사 선물을 미리 사서 새벽에 몰래 일어나 포장하는 애어른이 되었다.


2) 1995년


경상도에서는 나름 신도시였던 창원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학군지 도심 아이들에게 나는 졸지에 ’시골에서 전학 온, 촌스러운 사투리 쓰는 애’가 되어있었다. 어쩌면 사춘기 여중생의 예민함이 폭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내게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배짱이 있었다.


전학 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반 임원 모임의 사조직을 결성했으며, 합창대회를 1등으로 이끌어 학교 대표 지휘자가 되어 숙명여고 강당에 도곡 중학교 대표로 서게 되었으며,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친구들을 부추겨 노래방과 롯데월드도 신나게 휘젓고 다녔다.


3) 2005년


수능까지 이과였던 내가 갑자기 불어로 전공을 바꾼 이래, 대학 내내 진심을 바쳐 노력한 끝에 외고 출신이나 해외 거주 경력 친구들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은 올라올 수 있었다. 음성학으로 교수 트랙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나는 학계보다 더 넓은 세상을 원했다. 당해 한국의 불어 전공 졸업생 중에서는 내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으나 취업 전선에서 그건 의미가 없었다.


결국 불어를 사용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식품 기업 중 하나에 취직을 했으나, 연수 한 달 받고 바로 퇴사를 하였다. 식품 업계의 연봉 수준은 명성과 무관하게 말이 안 될 정도로 낮았다. 나의 대학 내내 고군분투한 삶이 이런 업계에서 평생 이런 연봉을 받으며 살기엔 너무 억울했다. 그러고 그간 모은 돈을 아빠에게 싹 다 바치며 전공을 바꿔 대학원을 갔고, 업계를 바꾸니 연봉이 두 배 이상이 되었다.


4) 2015년


나쁘지 않은 회사에 또래 대비 나쁘지 않은 연봉 수준임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늘 갈증이 있었다. 그간의 연봉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싹 모아서 또 한번 전공을 바꿔 미국 유학이라는 인생 최대의 풀베팅을 하고 돌아온 게 2015년이었다. 멀쩡하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돈을 모아야 할 때에 모조리 다 쓰고 돌아왔다. 그 무엇도 확정된 것이 없는 길이었다.


연봉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업계라는 것을 이미 예전에 배운 나는, 결국 금융 섹터로 가게 되었다. 이제는 업계뿐 아니라 몸값이라는 것이 적용되는 레벨이 되자 또다시 연봉은 거의 두 배 가까이로 순식간에 점프를 하였다.


5) 2025년


나는 또다시 나쁘지 않았던 회사를 또다시 제 발로 기어 나와서는 또 다른 리스크에 베팅한 시기가 바로 이번 시기가 아닌가 싶다. 기존 업계 변동 이후 그다음에는 몸값의 논리로 어느 정도의 레벨이 되자, ‘앞으로는 거의 연봉은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웬만한 급의 지사장으로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늘 조금이라도 발전하기 위해서만 결정을 내렸지, 조금이라도 내려갈 수 있는 결정을 한 적은 여태 없었다. 이제 직장인 커리어상 내게 남은 옵션은 극도록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올해는 남의 일을 하던 직장인에서 나의 일을 하는 사업인으로의 변곡점이 있었다.


늘 XXX5년은 성과가 나오기보다는 그 직전의 시커먼 어둠의 상태 쪽에 가까웠다. 인생에서의 또 다른 변곡점 앞에서 나는 다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여러 자산 중에서 특히 강점을 가진 배짱을 이제는 더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와 함께 2025년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굿바이 2025!

매거진의 이전글후배가 살렸지만 내가 스스로 망쳐버린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