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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Nov 17. 2019

내가 원하는 만큼 만들어가는 나의 커리어

커리어는 알아서 크지도, 회사가 키워주지도 않으니까

누구나 한 번은 있는 신입 입사 때 가장 우리를 달콤하게 속이는 거짓말이 있다. "이 곳에서는 당신을 성장시켜주고 커리어를 키워준다"는 것이다. 몇 주 짜리 합숙교육을 하고 한동안 교육기간을 갖는 대기업이나, 실무에 거의 바로 투입해야 하는 글로벌 외국계 기업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저런 메세지를 공통적으로  마구 뿌려대는데, 순진한 마인드로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거기서부터 회사생활의 기대치에 대한 비극이 시작된다고 본다. 단적으로 말하면 회사는 일개 개인인 당신을 키워주는 데 관심이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냥 회사란 사내의 보유 자금, 시설 등의 다른 리소스들과 마찬가지로 '인력이라는 자원'적재적소에 필요할 때 요긴하게 효율적으로 잘 써먹으면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회사의 태생적인 생리임을 인정하자. 우연히 당신이 중요해 보이는 자리에 '그 당시에 상대적으로 적합해'보이는 상황이어서 잘 써먹어지면 다행이고, 럼 덩달아 당신의 커리어도 조금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 조건이 더 이상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매우 유한한' 상호 간의 계약 조건일 뿐이다. 그것을 착각하여 회사가 나라는 개인을 신경 써서 커리어 트랙을 그려주고 '키워준다'고 생각한다면..그건 정말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것을 머지않은 어느 순간에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에 관련한 나의 목격담은 다른 글들에도 이미 언급한 바가 있으니 참고해도 좋겠다. (하단 링크 1)




출발부터 쁘지 않아 보였던 나의 커리어


나는 그룹사 신입사원 합숙 훈련에서 1월, 가득 쌓인 산10시간 행군 중간에 발을 삐고도 끝까지 이 악물고 완주를 해서 팀 1등에 헌신했었고 (그때의 미련한(?) 선택의 후유증은 이후 2년은 갔었지만..), 이후 이어진 개별 회사 합숙 교육에서는 밤새다시피 열정을 불태워 조별 과제 1등 조장으로 마지막 날 CEO 앞에서 백몇 명의 신입사원 대표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특히 여자로서 쉽게 갈 수 없다는 본사 해외영업에 바로 배치받아 사내 잘 나가시는 선배님들 밑에서 재미난 경험을 많이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고객 전략, 중장기 시장 전략, 마지막으로 전사 통합 전략 마케팅 주요 보고 담당 등을 거치면서 6년 동안 'B2B 영업마케팅' 커리어로서 주요 핵심부서를 다 돌았다. 이렇게 겉으로만 보면 그래도 나름대로 회사에서 신경 써서 커리어를 키워준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회사는 사실 특별히 나의 개인 성장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기회들을 준 것이 아니라, 그냥 그때그때 조직의 변화에 따라 특정한 스펙이나 백그라운드에 맞는 가용한 리소스들을 비교하는데 우연히 내가 걸려든 것뿐이었다. 해외 영업팀도 이제는 시대에 맞게 여자를 좀 늘려야겠는데, 유럽어까지 할 줄 아는 여자 신입 중 하필 나라는 사람이 있었고, 조직적으로 고객전략팀을 신설해 개별 영업 전략 강화해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해외 영업 경험이 있으면서 주재원을 보내기엔 경력이 모자라 본사에 남아 있는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또, 이제는 좀 더 중장기적 관점의 시장 전략을 강화해야겠는데 마침 영업과 고객 전략을 다 겪어본 현장 경험이 있는 실무급 풀에 마침 내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종내는 전사 통합적인 관점에서 전략 마케팅 보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주요 상품군을 담당해봤으면서, 국제경제 석사까지 한 적이 있어서 전반적인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공대나 언어만 전공했던 다른 비교군들과 약간은 달라 보이는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내 성격상 입사이래 계속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만 했었다면 이미 옛날에 정체를 참지 못하고 이직을 했을 것 같지만, 우연인지 지겨울 법할 때마다 계속 조직과 업무가 바뀌면서 나는 새로운 배움과 성장을 할 수 있어 그나마 한 조직에서 6년을 재미있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의 점프, 이후 정체될 뻔했던 나의 커리어


이후 잠시 유학이라는 것을 떠나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내게는 전혀 다른 산업과 업무라는 선택지가 생겼고 나는 또 한 번의 모험을 택하게 되었다. 전혀 다른 산업에서 전혀 다른 업무를 맡아 당장 실무 성과를 내야 하는 중간 간부급으로 새로 시작하는 데에는 리스크가 상당히 있다. 게다가 해외 유수 MBA라는 타이틀은 막상 관련 실무로 뭔가를 배워온 것도 아닌데 좀 무리해 보이는 기회도 주는 대신, 그만큼 기대치도 높고 부담을 지고 시작하는 측면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살아내야 했기에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에게 처음부터 새로운 시스템이며, 용어를 하나하나 물어가며 자존심 따위는 팍팍 묻어두고 한 땀씩 실무적인 기초를 배워가는 동시에 직급에 맞는 전략적인 시각까지 키워가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분야를 어느 정도 레벨로 상위 직급의 역할까지 조금씩 커버해내기 시작하면 큰 조직적 이슈가 없는 한 업무를 바꿔주는 일은 거의 없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잘 해내고 있는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지점이므로, 계속 이변 없이 그 최적의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대기업에서는 과장 정도 레벨부터는 일 좀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오히려 업무를 바꾸기가 제일 어려워지고, 거기서 정체가 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정말 빈발하다. 나 역시 이 정도면 충분히 되었고, 이제는 다른 것을 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던 때에 아무리 업무 변경 얘기를 해봐도 나의 커리어 성장나 개인의 행복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 회사도 팀장도 본인이 굳이 귀찮아지는 인사이동에 대해 전혀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고, 그에 대한 결로 겨우 팀을 옮길 수 있었다. (관련 글, 하단 링크 2) 그 이후 팀원을 전적으로 믿고 업무 권한을 많이 위임해 주는 팀장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면서 팀의 급변기를 틈타, 회사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비효율적이고 성과도 미미하던 일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먼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일을 벌이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갔다. 내가 그때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해서 팀을 옮기지 못하였다면? 아마도 나는 예전 그 일만 지금 4년 넘게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해내는, '효율성이 조금은 더 높아졌을지 모르는' 머신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 당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여전히, 나보다 훨씬 더 오래 계속 똑같은 그 업무를 지금도 하고 있다.


커리어 확장 또는 이동의 지렛대


한 영역에서의 정체와 소진이 아닌 커리어 확장,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능동적 직장인으로서 선택권을 가지며 살아가는 핵심은 무엇보다 '내가 가진 패'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한 것 같다. 대학 때, "앞으로 평생 쓰이지도 않을 것 같은 이 외국어를 하나 배우는 것이 취직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어"라며 많은 동기들이 전공을 등한시하고 토익에 올인하곤 했지만, 그 외국어가 내게는 해외영업이라는 커리어를 여는 발판이 되어 주었었고, 다들 "가방 끈 길어봐야 어차피 똑같이 직장 생활할 거면 무엇하나" 했지만 대학원에서 힘들지만 뒤늦게나마 사회과학을 배웠던 것이 직장을 잡는 데에도, 이후 직장 내의 주요 업무를 맡게 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계속 영향을 주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꼭 공식적인 학위 트랙이 아니어도 지속적인 배움과 활용은 나의 커리어를 스스로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산업과 업무를 바꾸었을 때에 내부 업계와 무를 따라잡는 데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전반적인 광고/마케팅 업계, 4차 산업 등 외부 트렌드를 끊임없이 수혈하기 위해 각종 세미나, 교육, 스터디의 기회를 개인적으로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하나씩 실제 업무에서 적용도 해보고 성공담을 공유해가면서 회사 내부에서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시도들, 새로운 마케팅 기법 등을 해낼 수 있는 사내 손꼽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외부의 트렌드나 요즘 외부 업계의 돌아가는 상황 등에 대한 확인을 하기 위해 윗사람들도 누구보다 먼저 찾게 되는 사람으로 포지션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란 기본적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새로운 것을 늘 갈구하는 조직이다. 나는 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먼저 찾아내어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방식으로 내 스스로의 커리어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동시에 회사가 원하는 새로운 성과들도 추가시켜나갈 수 있었다. 물론 제안한 것들이 운 좋게 좋은 성과로 이어졌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호기로운 시도가 실패로 끝날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원해서 시도해 본 것이고, 그만큼 경험치가 쌓인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과 한 두 번 잘 받고 못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봤다는 경험이고, 그 과정에서 쌓인 나의 내공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공유했던 에피소드에서도 느꼈겠지만, 직장 내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어릴 적에는 커리어가 우연적인 외부 요소들로 인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래도 다분히 있다. 중간에 산업과 업무를 동시에 바꾸는 것은 큰 이변이 없지 않은 한 분명 쉽지는 않으나, 나의 경우처럼 분명히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책임을 동시에 지기 시작하는 중간 관리자부터는 여러 케이스를 봤을 때, 내부에서 원하는 대로 업무의 이동이 정말 쉽지 않아 지는 것 같다. 지금 다니는 직장과 이 업무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전에 시외버스를 타면 표를 검표하고 "오라이~"를 외치던 차이라는 직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급변하는 이 시대에는 눈 깜짝할 새에 그렇게 '예전에는 있더라' 하는 직업군이 지금 바로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도래했을 때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마냥 당하고 있을 작정이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커리어를 주도해나가는 일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커리어를 이끌어가는 데에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내가 가진 다양한 '패'들을 늘려 나가면서 그것을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유연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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