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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l 15. 2019

'여직원'이 아닌 '듬직한 동료'가 되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

꼭 고과 시즌, 공식 평가 자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시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가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종종 힌트를 는 경우들이 있는데, 내가 인상 깊게 들은 것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중 하나는 "듬직한 스타일이지"라고 말했던 같은 팀 선배의 피드백이었다. 비슷하게 입사했던 여사원들의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자리였는데, 다른 동기들이 '발랄한', '상냥한' 등의 형용사로 묘사되고 난 뒤라 더욱 마음에 들었었다. 내가 회사에서 굳이 여성에게만 갖다 붙이는 '예쁘고 다정다감한' 등의 스타일로 인식되어 무엇하겠는가? 나는 딱히 홍일점의 꽃과 같은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보다, 그냥 믿고 같이 일하기 좋은, 제 몫을 하는 듬직한 동료가 되고 싶다.




전체 인력 성비 vs 추려진 인력 성비


내가 지금 속해있는 인더스트리는 그 특성상 남녀 비율이 상대적으로 밸런스가 좋은 편이고, 그 안에서도 마케팅 업무의 여성 비중은 여느 업종 못지않게 상당한 편이다. 그런데 성별, 학연, 지연을 배제하고 최대한 실력 위주 평가로 나름 공정하다는 이 그룹사에서 5개 계열사의 각 마케팅 핵심인력이 모인 그룹사 마케팅 전문가 과정에 본부 대표로 참여해보니, 핵심인력이라며 선발된 25명 중 여자는 단 5명, 즉 20% 뿐이었다. 모수 대비 인구 비율로 보면 못해도 그 두 배 이상은 되었어야 했다. 한창 실무력으로 가장 크게 평가받는 과차장급에서 여자들이 모수 대비 실력이 정말 떨어진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런 좋은 기회에 추천될 정도로 적극성을 효과적으로 어필해오지 못한다는 말인가? 혹은 일 외에도 가정 육아 등에 치여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추가적인 교육 등 개인의 발전까지 신경을 쏟을 힘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단지 그간 보여준 조직의 충성도 이슈인가? 아마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쌓여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이슈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대기업 12~15년 차 이상 묵은 직급들이 집합 교육에 올 때 쯤되면, 다들 반쯤 기울어진 태도로 최대한 나대지 않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투입해 잘 삐대다 오겠다는 자세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손들고 조장, 팀장 이런 거 하려는 사람 없다. 그래도 늘 있는 절차, 누군가를 대표로 내세워야 하는 순간이 오면, 엄청난 수준으로 나대는 여자가 있지 않는 한, 그냥 제일 목소리가 세 보이거나 반대로 가장 무던히 머슴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추천된다. 4개의 조, 4명의 조장. 여기서는 남자 비율이 100%로 올라간다. 단지 성비에 발끈해서 사명감 아닌 사명감으로 자청하기엔 나도 짬이 많이 묵었 머리가 커졌다는 것을 느낀다. 굳이 나서야 딱히 얻는 것도 없는데 '나대는 여자' 캐릭터로 끝까지 드세고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않은 인상만 남길뿐이다. 전체 정원 50% 이상에서 출발하여 선발 인력에서 겨우 20%, 그리고 리더 자리 0%.. 이런 식으로 그간 오랜 역사를 통해 부르짖으며 쟁취해온 여성들의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는 것인가.


여자 부끄럽게 만드는 여자들


큰 조직의 중간관리자로 마음껏 같이 일할 후배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솔직히 나는 성별을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도 상당히 중요하게. 특히 어린 신입 여사원들은 우연이라 하기엔 직간접적으로 안 좋은 경험이 상당한데, 개념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모두를 대접해야 하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어리고 이쁜 대접을 당연하게 여긴다거나, 이기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경우가 비율상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았다. 특히나 이런 경우 본인들이 조직에서 가장 어리고 그만큼 신세대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혹은 콧대 높게 생각하며 "나는 나이 많은 당신들과 매우 달라요"라는 메세지를 공공연히 대놓고 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저 어리고 이쁜 여자라면 일단 무조건 점수를 주고 시작하는 많은 기득권 남자들의 기본 성향과 참으로 잘 맞아떨어진 합작품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도대체 회사 일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이미지를 자신의 업무를 똑 부러지게 해 내는데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는 경우라면 결과적으로 뭐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런 것을 활용해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만일 그런 '어리고 발랄 또는 당돌' 등을 주 무기로 삼는다면, 머지않아 바로 다음 세대가 후배로 들어오는 순간 퇴물이 될 근거로 변신하기 딱 좋은 구실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같이 일하기 힘들었던 몇 안 되는 선배 유형 중에도 안타깝지만 여자 선배는 뺄 수가 없다. 사실 직접 겪은 수많은 선배들 중 여의 비율은 세대 특성상 매우 낮은데,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별로였던 단 몇 번의 기억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이 힘들었던 이유는 '극심한 감정 기복'을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투여하거나, '본인의 개인적인 기분'을 관련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그대로 다 전파하는 경우였다. 사무실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거나, 혼자 분풀이를 한답시고 자기 자리에서 전화기나 마우스를 집어던진다거나..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강도의 행동들이 공교롭게도 여자 선배들이었다. 뭘 하든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은 당연히 여자든 남자든 있게 마련인데, 내가 우연히 운이 나빴던 것인지 몇 안 되는 여자 선배라 더 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환경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는 조직생활에서 정말 본받기 싫은 유형으로 각인되어있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괴담처럼 내려오는 얘기 중 하나는 어떤 여자 팀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말을 시키는 것을 노이로제처럼 싫어 신경질적인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가 출근 후 화장실에서 완벽한 화장으로 변신을 하고 나오기 전은 항상 기분이 안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큼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부끄러워지는 이야기였다.


'여직원' 아닌 '당당한 동료'로 기억되기 위해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모에서 이미 우리는 당연히 '여직원'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지만, 굳이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출근 복장인데 너무 야하거나 노출이 심한 옷, 혹은 귀엽고 하늘거리는 옷을 고를 필요는 없다. 업무를 하는데 섹시하거나 귀여운 이미지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외양이 주는 메시지도 전략적인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당당한 프로페셔널로 인정받고 싶은 바람을 담아, 아무리 여직원 복장 규정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더라도 웬만하면 기본적으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깃이 있는 셔츠나 각이  잡는 재킷 둘 중 하나는 꼭 걸치도록 신경을 쓰려한다. 임신으로 배가 상당히 나와있는 상황에도 여전히 그 컨셉을 버리지 않았더니 6개월까지도 임신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에서 임부임을 여기저기 광고할 수 있는 책상 위 푯말과, 차별화되는 색의 사원증 끈 등을 지급하였지만 굳이 그런 것으로 시끄럽게 떠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여 고이 서랍 속에 묻어두었다. 어차피 긴밀하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 아픈 사람이 굳이 회사에서 광고하지 않듯 그런 것을 강조하면서 일을 안 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임산부임을 사람들이 잊을 정도로 전혀 빼지 않고 심지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내 몫을 해 내었다. 여자들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으로 한동안 공백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도 한 사람의 몫을 한동안 계속 못하는 경험을 준다면 조직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여자를 점점 덜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사명감도 있다.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학습 또는 주입된 '겸손' 또는 '나대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스스로의 족쇄에 갇혀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책이나 사례를 보더라도 신기하게 여자들은 회의 시 센터에 앉아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고, 평가나 승진 등의 상황에서도 남자들에 비해 훨씬 더 소극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접하기 전부터도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었지만, 회의 시마다 다들 눈에 띄는 가운데 자리에 앉기 부담스러워하며 피하길래 큰 부담 없는 내가 그냥 그 자리를 채워주다 보니 공교롭게 늘 가장 눈에 잘 띄는 센터에 앉아오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도 늘 질문이 많았던 나는 회의 시에도 침묵 가득한 어색함이 싫어서라도 발언을 종종 하게 되었고, 결국 '센터에 앉아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직 시 연봉 협상을 했을 때에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고과 면담을 했을 때에도 굳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남자들에 비해서 여자들이 굳이 같은 일을 하고도 손해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조금 더 귀찮아질 수 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도, 내 몫을 챙기는 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서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욕을 먹거나 문제가 발생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정 원하는 방향대로 된 적이 다.  




조직 내 성별 이슈라고 할 때, 유리천장이니 남녀평등이니 외치기 전에 여자들 스스로도 먼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나는 후배로서 또는 선배로서, 설마 단지 여자라서 차별을 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지", "과연 정말 다른 것에는 차이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분명히 있다. 젊은 날 개인의 욕구를 뒤로하고 조직이라는 생리를 집중적으로 체득해온 '군대'라는 경험이 없는 것은 여자들에게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큰 핸디캡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자들도 이스라엘처럼 함께 어떤 형태로든 군 복무를 같이 하는 게 맞다고 보는 주의다. 그러고 동시에 명절 제사라는 악습도 없애고, 육아 휴직도 여자 3개월 후 무조건 남자 3개월 이런 식으로 평등하게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 부족한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자들은 특유의 강점이라고 일컬어지는 EQ와 공감 능력을 더욱 발휘하여 조직에서 남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특별히 더 기울여야 할 지에 대해 추가적인 고민과 그 결과의 실행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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