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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Apr 24. 2019

리더십에 자격이 있을까?

서구에서 말하는 리더십, 우리와 다르더라

거의 평생 한국 정규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커온 나는, 드디어 자력으로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때가 도래하자 의외의 곳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미국 유수의 MBA 과정을 위해서는 GMAT이라는 시험 점수의 한 고비를 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리더십'에 관한 자신의 경험 기반 에세이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 과정을 지원할 때쯤의 짬은 (재벌 2, 3세가 아닌 이상) 입사하여 기껏 사원~대리 나부랭이 정도인데, 그 나부랭이에게 감히 리더십이라니?! 참 당돌하고 가당치 않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내 기준에서 볼 때 여러 별것 아닌 이야기를 리더십이라는 테마에 '갖다 붙여' 엄청 뭐가 있는 냥 '포장'을 하는 그런 '에세이를 쓴다'는 게 참 부자연스럽고 오글거리고 뭐 그랬다. 외국 애들베스트 샘플을 아무리 읽어봐도 "분명 그 짬에 별 대단한 것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참으로 있어 보이게 부풀리기를 잘도 했네"하는 생각뿐이었다.




리더십의 참 뜻


결국 운 좋게 세계의 내로라하는 "Young Professional"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현지 생활을 해보면서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생각해온 리더십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협소하고 심지어 잘못 생각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십에 대한 나의, 그리고 평생 토종 한국인들의 많은 개념은 '리더라는 자리가 주는 권위적인 자격을 카리스마 있게 휘두르는 것'이라고 어쩌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양 애들은, 리더 역할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고, 리더십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행동했다면 아마도 "뭣도 아닌 주제에 나댄다"라고 할 법한 일 천지로 벌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같은 반에 Social VP (사교활동 리더)가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누구든 파티든, 게임이든, 운동회든 주최할 수 있고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면 마땅히 생각한 자신이 스스로 판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었다. 누구도 자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주도하는 자가 그 판에서는 당연히 리더이다. 노는 것뿐 아니라, 학습, 취업준비 등 모든 활동에 적용되었다.


미셸 오바마, 녀의  'Becoming'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책은 당연히 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사람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라니? 대단한 것은 '그'인 것이지, '그 아내'는 아니지 않나? 그냥 덤으로 무언가가 '거저' 된 사람의 얘기 따위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퇴임 당시 그의 남편보다도, 전임 대통령들보다 미국민에게 인기가 더 많은 (2017년 갤럽 여론 조사 결과 미셸 오바마 호감도 68%, 버락 오바마 58%, 빌 클린턴 57%, 조지 부시 40%) 그녀에게는 분명 거저 주어진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장장 56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한 번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내용 정작 리더십이 묻어나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서전이나 자기 계발서, 감성 에세이라기보단 온몸으로 평생 증명해 온 리더십에 관한 교과서 같은 책다.


그녀의 책에서 읽히는 리더십


내가 본 그녀의 첫 번째 리더십은,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의해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본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낸, 스스로의 삶과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가난흑인 노예의 후손, 장애를 가진 아버지, 자신에게 쏟아진 세상의 모든 불리함과 편견, 이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당당히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 모습(Best version of herself)을 이끌어내었다. 두 번째 리더십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정치판이라는 환경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대로 활용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선하고 진실된 가치를 실현한 것이다. 그녀의 노력 덕에 미국의 쓰레기 같은 식습관에 대한 경종을 울렸고, 급증하던 소아비만 증가율의 감소 등이 가능했으며, 더 많은 소수민족, 흑인, 여성, 군인 등이 이전보다 희망을 좀 더 품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리더십은, 그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개인적으로는 결국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유능한 로펌 변호사, 시카고 병원 부원장까지 지낼 정도로 야망 있고 능력 있는 한 여자가 잠시 자신의 꿈과 야망을 접어두고, 남편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전격적인 지원군이 되고, 두 딸들을 평범하기 힘든 환경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면서 꿋꿋이 올바르게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을 한 것이다. 솔직히 남편과 가정을 위한 여자들의 희생 스토리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것인데, 그녀의 이야기는 그냥 '희생하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본인의 역량을 활용하여 스마트하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로 이끌어내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이야기다.    


리더십 자격


대부분의 많은 한국 사람들이 군대든 회사든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명확한 위계서열을 학습하고, 나를 공식적인 리더로 '다른 누군가'가 지정해 주기 전까지 리더십이란 내게는 가당치 않은 무엄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우리의 사회생활을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보람 없는 것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많은 사람들 본인에게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을 때 동기부여가 되고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리더가 되기 전까지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바꾼다거나, 하나라도 더 배운다거나, 정작 공식적인 리더가 되었을 때를 다방면으로 준비한다거나 할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직급이나 남이 주는 자격과 관계없이, 우리는 각자 에서만 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무궁무진하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리더라는 타이틀이 주어졌을 때 갑자기 생겨는 것이 아니고, 바닥일 때부터 소소한 삶의 주도성을 놓지 않는 부터 시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10년 넘게 대기업 직장 생활하면서 운 좋게 월요병 한 번 없이 아직도 늘 즐겁게 출근할 수 있는 비결도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시켰기 때문'도, '남의 돈을 받기 위해 해주는 남의 일'도 아닌, '돈까지 받으며 배우는 인생공부 기회' 혹은 '내가 통제하기 나름인 내 일'이라는 프레임에서 기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내가 제일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지만 가장 잘 못하는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늘 시간 에누리 없이 간당간당하게 움직이는 태도, 간혹 불필요한 감정에 빠져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소한 습관,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사고방식, 일단 저지르고 나서 수정해가는 습관 등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던 성현의 말은 참으로 옳은 듯하다. 일단 나부터 다스리는 데서 시작하자. 내 삶에 대한 리더십이야말로 누구도 뭐라 할 것 없이 내가 부여하는 만큼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 결국은 리더십이건 뭐건 간에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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