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자기 계발에 열심이었고, 사회적인 욕심도 야망도 있다. 스쿠버 다이빙과 같은 모험도 좋아하고, 주기적으로 와인을 홀짝이며 종종 느슨해지는 것도 좋아한다.
화려한 싱글이나, 결혼을 만약 해도 최소한 애는 없을, 평생의 딩크족이 더 맞을 법한 인간이 바로 나다. 책을 써도 사회생활이나 커리어에 관한 책을 쓸 줄 알았지, 육아책을 그것도 인생 첫 책으로 먼저 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이런 반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그 아무것도 없었다.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성향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늘 마음을 열고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있었고, 실제로 순간순간 나의 의지에 의한 선택들의 결과가 여기까지 이끈 것이다. 육아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였다. 육아 역시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리하다.
아기를 가지기도 전에 오랜 세월 육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부담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기저에는 늘 들어왔던, “출산과 동시에 엄마의 삶은 무조건 잃게 되고, 최소 1년은 처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괴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 불변의 진리처럼 퍼진 괴담이 문제였다.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아이를 키우는 외국 친구들을 관심 가지고 보게 되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들은 초보이거나 아기가 아무리 어리거나 상관없이 아기에게 그리 절절매지 않아 보였다. (정도의 차이는 몹시 주관적일 수 있다.) 그 친구들처럼 “쿨하고 자기를 잃지 않는 육아를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외국 친구들처럼 강박 관념을 덜고, 조금 더 편하게 육아해보자’라는 내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외부 매체가 퍼가면서 추가 공유만 100회가 넘고 공감수는 몇 배 더 많았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특히 현재 해외 사는 사람들이 너무 공감한다는 댓글들을 달아주었다.
그러나 당연히 악플도 있었는데, 기억나는 것은 “애 키워보기나 하고 이런 글 쓰는 건가요? 이건 뭐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직접 해보고 쓰면 공감이라도 하겠네요.”하는 글이었다.
그 글에 상처를 받았냐고?
일차적으로 든 생각은 연민이었다. 남의 글에서 시사점을 찾아 뭔가 도움될 것을 하나라도 건질 수도 있을 시간에, 저렇게 방어적이고 소모적으로 나오니 저 사람은 평생 힘들고 원망 섞인 육아만 하겠구나. 다음으로 나는 그 글에서 나의 글쓰기에 시사점을 얻었다. “아, 주장만 하기보다 내가 직접 해보고 글을 쓰면 그것이 훨씬 더 큰 울림이 되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쓰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조금은 힘을 뺀’ 육아, ‘나도 챙기는’ 육아를 직접 해보면서 틈틈이 짬을 내어 경험에 의거한 글을 지었다. 육아는 생각보다는 괜찮았고, 심지어 나를 둘러싼 인생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까지 주었다.
임신 기간 무수한 육아책과 경험담을 읽으면서 내가 꼭 듣고 싶었지만 정말 찾기 어려웠던 그 말,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
“육아, 이렇게 적당히 요령껏 해도 되고, 그렇게 해서인지 다들 얘기하는 것처럼 꼭 너무 그리 힘들기만 하지는 않더라.
육아기는 무언가를 잃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을 더욱 깊은 진폭으로 성장시켜줄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육아, 겁낼 필요 없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
※ 원고는 현재 1차 탈고 후 2차 교정교열 진행 중입니다.^^ (텀블벅 공개예정 프로젝트 오픈)
누군가의 임신 출산을 축하하면서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기를 작게나마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