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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인 Jul 21. 2019

폭력에 대하여

영화 <시티 오브 갓> (2002)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영화 <시티 오브 갓>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콘스탄트 가드너>(2005), <눈먼 자들의 도시>(2008) 등을 연출한 브라질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2002년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전 세계 50개 이상의 상을 석권하며 명성을 떨치게 됐다.


    영화는 브라질 빈민가 마약상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리는데, 동명의 1997년 소설이 원작이다. 그 배경인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가 ‘파벨라’에서 실제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출연자의 90% 이상이 그 지역 주민들이고, 실제 마약 사업에 가담한 배우들도 출연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배우들이 영화에 대해 감독보다 더 잘 알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인지 영화를 보면 정말 브라질에 있는 것만 같은 극도의 현장감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전문 연기자가 아니라면 우려되는 연기력에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생활연기’로 그 도시를 오롯이 담은 영화다. 브라질에서 지낸 지인의 말에 따르면, 현지인들이 자기들 영화라며 매우 좋아해서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한다.


    빈민가는 ‘시티 오브 갓’이라 불린다. 마약, 절도, 살인으로 들끓어 악명 높은 곳이다. 영화는 칙칙하고 암울하다. 총을 쏘는 장면이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또 왠지 활기차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닭요리를 준비하는 칼질로 시작한다. 흥겨운 음악이 나온다. 도망가는 닭을 잡기 위해 총까지 동원하며 쫓아가는 패거리를, ‘로켓’이라는 청년이 맞닥뜨린다. 위협적인 횡대로 서있는 패거리 앞에 카메라를 메고 서 있는 그는, 뭔가 준비태세를 갖추는 듯하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의문으로 남긴 채, 비장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시티 오브 갓’에서는 도망가나 그냥 있으나 죽긴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화면은 1960년대로 돌아가 로켓의 어린 시절부터 새로 시작한다. ‘로켓’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를 둘러싼 ‘시티 오브 갓’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적 진행

    엄밀히 말하면 ‘시티 오브 갓’ 갱스터들의 이야기다. 앞서 밝혔듯,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브라질 작가 파울로 린스가 고향에서 직접 유년시절에 겪은 갱단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집필에 1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영화는 원작이 있다는 걸 모르고 봐도 다분히 소설적인 진행이다.


    영화의 큰 틀은 내레이터인 로켓이 빈민가 실상을 찍어 신문사 사진기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서, ‘리틀제’라는 갱스터가 마약상으로서의 권력을 넓혀가는 내용이 주가 된다. 이 점에서 액자식 소설의 성격을 갖고 있다. 서술자인 로켓의 사적인 이야기도 나름 비중 있게 다루긴 하지만, 좀 더 두터운 액자 정도라고 하고, 로켓의 이야기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아무튼 이 영화는 서술자인 로켓이 때로는 1인칭적으로, 때로는 전지적으로 ‘시티 오브 갓’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특이한 건 액자 속 이야기의 초점 또한 리틀 제에만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인물들을 조명한다. 중심인물들을 차근차근 바꿔가며 그들 각각의 사정을 전개한다. 그 양상이 챕터를 하나씩 넘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영화의 시작도 리틀 제가 아닌, 마을의 ‘텐더 트리오’라는 악명 높은 절도단의 이야기다. ‘텐더 트리오’ 세명 각각의 생활을 비출 것처럼 하다가 그들은 결국 모두 전락하고, 그들을 따르던 꼬마 ‘리틀 디스’로 영화의 초점이 옮겨가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꼬마 리틀 디스는 마을의 영향력 있는 마약상 ‘리틀 제’로 큰다. 영화 중반부턴 ‘네드’라는 인물이 리틀 제의 라이벌 격인 캐롯 일당에 합류하게 되는 이야기도, 또 다른 챕터인 마냥 교차된다. 여기에 액자인 로켓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드문드문 등장하기 때문에, 산만한 전개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절정은 ‘리틀제’ 일당과 ‘네드’ 일당무자비한 총기전이다. 신경전을 하던 두 일당이 마약 유통의 실세를 가르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 광경까지 보고 나면, 영화가 ‘텐더 트리오’로 시작해 여러 인물들을 거쳐 온 것이, 전부 이 사건을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여러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버거웠는데, 총기전까지 보고 나면 비로소 명확해진다. 흩어져 있던, 리틀 제, 로켓, 네드의 병렬적인 이야기들이,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인상이 든다. 특히,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땐 ‘네드’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TV 뉴스에 나와 총기전에 대해 인터뷰한 실제 클립이 나온다. 영화의 모든 짜임이 짧은 영상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란한 연출


    소설적인 서사의 뼈대 자체가 매우 훌륭하기도 하지만, 대담한 이미지와 기교적인 편집이 그 맛을 아주 잘 살렸다. 잘 쓴 책 내용을 카메라로 잘 담은 정도에 그치지 않는 현란한 연출이다. 영화의 호흡은 굉장히 빠르고 카메라는 불안정하다. 빠른 패닝이나 부감 샷, 장면 분할 등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많다. 시종일관 어둡고 칙칙한 와중에, 마을 청년들이 고민 걱정 없이 노는 장면에선 다채로운 색상이 화면을 채우는데, 새삼 아름답다. 빛을 정말 잘 사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CF 연출 출신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들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은데, 창의적인 편집법이란 측면에선 접점이 분명히 느껴진다. 다만, 내용면에선 결이 상당히 다른데, 쿠엔틴 타란티노는 폭력을 노골적이고 풍자적으로 풀어낸 반면, <시티 오브 갓>은 강간이나 살인의 장면에서 카메라가 시선을 도의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느껴진다. 무자비한 폭력의 실상을 무겁게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반영된 부분이다.



갱스터 사회에 대한 통찰


    이 영화는 갱스터 사회에 대한 통찰이 정말 돋보인다. 인물들이 각자의 계기로 갱단에 들어가, 집단에 융화되고, 악이 내재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묘사된다. 영화는 ‘리틀 제’라는 한 명의 인생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때문에, 갱스터 사회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층위에 오른다.


    인물들에게, 악의 동기는 다양하다. 크게 ‘권력’과 ‘복수’로 나눠볼 수 있다. 자신을 얕보지 말라는 듯 ‘벌써 총으로 몇 명이나 죽였다고’ 으스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싶다고 갱단에 넣어 달라는 아이도 있다. ‘텐더 트리오’에 대한 동경과 시기가 동시에 있었던 ‘리틀 제’는 전자에 가깝고, 동생을 잃어 복수를 결심한 ‘네드’는 후자에 가깝다.


    이 맥락에서, 지금껏 봐온 느와르 영화들과 비교가 됐다. 개인적으로, ‘권력욕’, ‘정복욕’, ‘복수’, ‘앙갚음’ 등은, 폭력의 허무감을 주제 삼은 느와르 영화들 속에서, 소재에 불과하다는 감상이 컸다. 폭력의 동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내용적인 수단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권력욕과 복수심 같은 내면 심리 설명에, 서사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힘을 크게 실어주고 있다는 인상이 크다. 예를 들어, 리틀 제는 ‘텐더 트리오’에게 멸시를 받아, 그 중 한 명을 죽임으로써 그 결핍을 완화하고, 진정한 ‘악인’이 된다. 또, 여자를 만들어 성격 좀 죽이라는 듯한 친구의 말에 여성에 대시를 해보는데, 실패하자 그녀와 함께 있는 남자에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정부의 갱단 소탕 일환으로, ‘네드’가 신문에 나왔을 때, 리틀 제는 자기가 보스인데 이름조차 안 나왔다며 울분을 토하는, 우스운 장면도 있다. 이처럼 영화는 그의 권력욕 기저에 있는 여러 결핍들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복수’로 대변되는 네드도 마찬가지다. 복수심의 원천이 되는 ‘동생의 죽음’을, 네드의 심리 묘사와 함께 정성적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시작된 악은 폭력이 반복적으로 행사되며 점점 인물들에 내재된다. 내가 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하며 봤던 것은, 그 무시무시한 악인들의 집단에서도, 그들 나름의 인간성이 발견되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위선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리틀 제’가 화가 나 친구 ‘베니’와 몸싸움을 벌이지만, 그 순간 다른 사람에 의해 베니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땐 진심으로 슬퍼한다. 또, ‘네드’가 캐롯 일당에 들어갈 때는,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말자고 약속을 받아낸다. 영화의 총성은 끊이질 않고, ‘절대 악’이라 할 만한 상황이 반복되지만, 인물들은 마지막 자존심 같은 인간성의 끈을 간직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결국에는 폭력이 반복되며, 그 유약한 명분마저 사라지는 것이 이 영화의 정점이다. 특히, ‘네드’는 ‘리틀 제’와는 달랐던 인물이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리틀 제만을 죽이기 위해 갱단에 들어간 것이고,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는 규칙까지 세운 사람인데, 갱단의 세력 확대를 위해 시민들에게서 절도하고, 심지어 시민을 살해하기까지 한다. 이를 영화는 네드가 캐롯 갱단에 들어간 후, 세 차례의 범행을 통해 얘기한다. 첫 번째 범행, ‘네드는 캐롯이 죽이려던 상점 주인의 목숨을 구한다’, 두 번째 범행, ‘네드는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세 번째 범행, ‘예외가 규칙이 되었다’. 영화는 이번은 “예외”라며 폭력을 합리화하던 사람이, 결국 자신의 도덕성을 저버리고 폭력과 타협하게 되는 민낯을 비춘다.


    폭력이 일상이 되면, 그 후엔 그 어떤 권력욕이나 복수심도 의미가 없다. ‘아무도 전쟁의 원인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대사가 정말 적절하다. 전쟁의 목적은, 그저 총기 구업, 자본 확보를 통해 더 큰 전쟁을 치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집단은 결국 파국을 맞을지 언정, 사회의 악은 끊임없이 대물림된다. 결말도 ‘리틀 제’ 세력의 어린 갱스터들이 리틀 제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어린 갱스터들이 어떻게 커갈지는 단연 살벌하다. ‘고립된 작은 마을 속 마약 갱단의 세력이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던 영화는, 결국 “끝없는” 폭력이란 결론을 내고 마친다. 원흉 모를 피로 물든 사회는 그 작은 마을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이 세력이 되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 영화라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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