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돌이 아니 숲돌이는 많이 아팠단다. 하무이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숲돌이가 큰 병에 걸려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하무이는 멍하게 서 있었어. 살구나무꽃에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는데도 모든 풍경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지. 사실은 하무이가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어 버렸는데 말야. 숲돌이가 머지 않아 떠나버린다니. 그것도 영원히 말야. 하무이는 자신의 마음을 받치고 있던 차가운 빙산이 녹아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 빙산은 무너지고 갈라져 바다 위로 둥둥 떠내려갔단다. 하무이는 스스로를 원망했어. 외출할 때 숲돌이가 하무이를 부르며 큰 소리로 울 때 화를 내며 야단을 쳤던 장면이 떠올랐어. 더구나 악당, 떼쟁이라며 숲돌이를 원망하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하무이는 괴로웠어.
밤이 되자 하무이는 정신을 차리고 점을 치는 주사위를 굴렸어. 나을 수 없다면 숲돌이가 10월까지 편안하게 지내줄 순 없나요. 생일이 10월생이랍니다. 달도 만월이 끝이고 다시 새로이 시작하는데 아이도 원을 한 바퀴 돌아야지요. 황동 주사위는 어른거리는 불빛에 반짝이며 굴러갔어. 황소자리에 들어간 태양이 다섯 번째 집에서 멈추었지. 하무이는 가슴에서 북처럼 울려퍼지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주사위에 각인된 숫자와 기호를 확인했어. ‘숲돌이는 당신이 만들어가는 창조의 집에서 밝고 아름답게 살아간답니다.” 하무이는 다시 또 멍해졌어.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눈이 멀어버린 듯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어. 가슴 속에 살아 있던 아주 작은 꽃 한송이가 서리를 맞아 갑자기 시들어버리는 느낌이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하무이는 어둠 속으로 한 계단씩 걸어내려가는 느낌을 받았어. 창 밖에는 화사한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말야. 숲돌이를 병들고 아프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인 것만 같았지. 숲돌이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지도 몰라. 하무이는 미안한 마음에 숲돌이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하무이는 숲돌이가 꼬맹이였던 시절을 기억했지. 어린 숲돌이는 잠들기 전에도 종종 다정한 눈빛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하무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곤 했단다. 별을 관찰하는 아이처럼.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 말야. 말썽을 부려 야단을 맞은 날 저녁에도 숲돌이는 하무이를 향해 미소를 띄었어.
하무이와 숲돌이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어. 사랑하면 온 몸의 감각이 발달해 초능력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고 하무이는 굳게 믿고 있으니까.
하무이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오랫동안 숲돌이를 바라봤지. 그러곤 숲돌이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로 마음 먹었어. 그것은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란다. 하무이에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한 존재가 생명을 얻어 새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 이름을 가진 존재는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숨을 쉬고 눈을 뜨게 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며 내가 누군인지 알게 되는 것이지. 또 이름은 나침반과 같아 이름의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힘이 있다고 하무이는 믿었어. 하무이는 숲돌이에게 ‘우솜돌’이란 이름을 지어줬어. ‘웃음 짓는 튼튼한 아이’라는 뜻을 가진 우솜돌. 그것은 밝게 빛나는 천진난만한 태양을 뜻했어. 또 태양빛을 먹고 사는 모든 꽃과 나무들을 의미하기도 했단다. 숲돌이가 몸은 아프지만 늘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솜돌은 잘 움직일 수 없었단다. 하지만 하무이 앞에서 씩씩하게 산책을 했지. 먹고 싶지 않았지만 먹으려 애썼고 미소를 짓기 힘들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했어. 하무이가 방 안에 들어서면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단다. 방 안에 들어온 파리가 윙윙대자 우솜돌은 입으로 파리를 잡으려 쩝쩝거리기도 했어. 하무이는 그만 크게 웃었지. 하지만 병은 더 깊어져만 갔어. 결국 아이들과 떨어져 다른 방에 혼자 있어야만 했어. 우솜돌은 낑낑거리지 않았어. 하무이는 우솜돌을 안고 쓰다듬다 잠이 들었지. 달이 훤하게 뜬 어느 날 하무이는 속삭였어. “우솜돌, 우리가 함께 있다면 조금은 견딜만 할 거야.”
하무이 품에 안긴 우솜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어.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거 같아.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하지만 하무이가 곁에 있잖아.’ 우솜돌은 혼자 생각했지. ‘좋은 일도 있어. 소원이 이루어졌거든. 조용한 방에서 하무이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애써 위로를 해도 어쩐지 무언가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우솜돌은 이제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 못했어. 배가 고파도 밥을 먹기 힘들었지. 무언가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지. 우솜돌은 점점 잠드는 것이 아쉬워졌어. 잠이 들고 싶지 않은데 무거운 눈꺼풀이 덮여오고 창문이 환해졌다 어두어지는 날이 반복됐지. 더구나 하무이의 얼굴은 늘 흐릿하기만 했어. 하무이가 일하러 나가는 점심 무렵에 우솜돌은 혼자가 된 방 안에서 마른 입을 달싹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불렀어.
내 말 들려? 하무이와 영원히 살게 해 줘, 부탁이야.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 우솜돌은 다시 한 번 부르짖었어.
내 말 들리는 거야? 하무이와 살게 해 줘, 영원히.
이번에 우솜돌은 힘겹게 찔레꽃 정령님을 불렀지.
이 봐, 정령님. 듣고 있는 거야?
정령님은 나타나지 않았어. 우솜돌은 혼몽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어. 하무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우솜돌을 바라보고 있었어. 반가운 마음에 살살 꼬리를 흔들며 잠이 들었어. 다시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문득 벽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지. 벽지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천사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단다. ‘천사는 사료를 들고 있어야 하는데…’우솜돌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지.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하얗게 일렁이는 찔레꽃 정령이 우솜돌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었단다. 우솜돌은 반가움에 히이잉 울었지. 그리곤 마른 입을 달싹이며 힘겹게 말했어.
“나… 많이 아파.”
정령은 희미한 미소를 띄었지. 찔레꽃 정령은 여러 산을 관리하고 있는 산신령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외출증을 제출하고 나서야 산을 벗어날 수 있었어. 그리고 곧장 우솜돌이 보내는 전파를 따라 허둥지둥 하무이의 집까지 오게 된 거야.
“혹시 말야. 병이 나아 하무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거야?”
“아니.”
우솜돌은 정령의 대답에 그만 크게 실망했단다. 뜨거운 무엇인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어. 그만 ‘히잉’소리를 내고 말았지.
“난 하무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았어, 태양처럼 밝고 튼튼하게 살라고…나 그러고 싶어. 하무이와 오래오래..또 엄마 다롱이를 지켜줘야 해. 까비도 세수를 시켜줘야 하구… 아이들과도 계속 잘 지내고 싶어.”
정령은 방 안을 둘러보다 문득 벽지에 그려진 아이스크림을 든 천사를 바라보았단다. 그리곤 천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지.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하늘의 별들도 마찬가지지.”
찔레꽃 정령은 아이스크림을 든 천사 강아지에게서 시선을 돌려 우솜돌의 검은빛에 가까운 갈색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단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은 여기가 끝이지.”
찔레꽃 정령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지.
“휴식하는 거라고 생각해.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휴식. 휴식기에 들어가면 너의 영혼은 색깔이나 형체가 없어지지. 있다면 그저 밋밋한 회색으로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은 형체없는 영혼들을 감자떡이라 부르곤 하지. 사람들은 말하곤 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사실 말야, 그런 곳은 없어. 다만 이리저리 흩어졌다 모이는 것을 반복하는 거지. 너와 같은 강아지들이 함께 사는 곳도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강아지천국이라고 부르더구나.”
“그곳에서 떠난 져비, 우믈이, 부니를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만날 수 있겠지. 지상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한 번 닿은 인연들은 보이지 않는 끈에 서로 묶여 있거든.”
“그런데 말야. 왜.. 떠나야 하는데?”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썼으니까. 시간을 다 쓰게 되면 입고 있는 옷을 반납해야 해. 네가 입고 있는 옷은 이미 너무 낡았어. 그 옷은 더 이상 입을 수가 없는 거야. 너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옷을 갈아입는 거란다. 이제 새로운 옷이 널 기다리고 있어."
우솜돌은 말했지.
“난 내 얼룩덜룩한 코트가 좋아. 내 코트는 비단결처럼 부드러워. 공작이나 앵무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흰색, 검정색, 갈색, 노란색이 섞여 있어. 한 마디로 말하면 다양성 그 자체야. 다양성이란 말 알아? 새로운 옷은 필요 없어.”
찔레꽃 정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우솜돌은 정령의 눈치를 보다 풀이 죽은 듯 말했어.
“꼭 가야하는 거구나. 나 혼자 가는 거야? 혼자는 썩 내키지 않아.”
“우리는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나야 한단다. 그것은 일종의 규칙과 같은 거지. 하지만 혼자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아. 너 같은 녀석들이 마음에 들만한 아주 멋진 길이 펼쳐지거든. 석양이 지는 해안길 혹은 이른 새벽 숲길 혹은 논두렁 혹은 밭두렁......”
“우와, 내가 좋아하는 길은 뭘까? 하무이와 함께 걷는 길로 미리 예약하겠어!”
“몇 번을 말해? 혼자라니까!”
“됐어. 여행가고 싶지 않아. 하무이와 있고 싶어. 하무이와 걷고 싶어. 나에게는 아무도 없었어. 하무이는 내 짝꿍이야. 하무이와 영원히 살고 싶어.”
우솜돌은 고집을 부렸어.
“거울은…”
정령은 말끝을 흐렸어. 그러다 다시 이어나갔지.
“거울은 사람이 다가오면 사람을 비추고, 새가 날아오면 새를 비추지. 거울은 무언가를 가지지 않아. 다만 온갖 풍경들을 비출 뿐이야. 가지려 하기 때문에 잃어버리는 듯한 착각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픈 거야. 우리는 서로를 가질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난 마음이 아파…..”
정령은 우솜돌을 지그시 바라봤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를 띄었단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말야.”
우솜돌은 눈물로 촉촉해진 눈가를 찌푸리며 억지로 하품을 했어. 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
“내가 떠나더라도 언젠가 하무이와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바라고 또 바란다면……”
“가족도 될 수 있어? 난 또 개로 태어나 하무이와 만나게 되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길고양이로 태어나 우연히 스쳐지나갈 수도 있긴 하지. 하무이의 영혼이 아주 맑다면 널 알아볼 수도 있겠지. 너라는 것을 모른 채 널 알아보는 거지.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아끼며 사랑해야지.”
“그러면 하무이와 만날 수 없네. 하무이 머릿 속엔 보늬나 돈이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해. 날 알아볼까?”
“그나저나 너의 하무이는 가끔 점을 치던데 네가 아플 걸 왜 예측을 못해?”
“하무이는 미래는 못 맞추고 지나간 사건은 기가 막히게 잘 맞춰.”
정령은 어이가 없었어. 우솜돌은 어느새 지쳐 잠이 들었단다.
숲 속에는 아주 맑고 깊은 호수가 있었어. 먼 길을 걸어온 하무이는 눈 앞에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았지. 호수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그대로 품은 채 물결조차 없었어. 호숫가에는 낡은 오리배가 한 척 묶여 있고 석양을 받아 오리의 볼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단다. 근처에 울창한 잡목숲이 보였지. 숲 속에 들어서자 바닥이 온통 푹신푹신했는데 소나무 이파리가 쌓여 노란 덮개처럼 보였단다. 숲길을 걷다보니 허름하고 작은 방갈로가 보였어. 가까이 가 보니 꽤나 튼튼하게 지은 나무집이야. 그곳에 오리배의 주인이 살고 있었단다. 하무이는 조금 무서웠어. 계단을 올라서자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우는 소리가 들렸거든. 하무이는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어. 문이 열렸어. 그곳에는 아주 젊은 청년이 서 있었지. 하무이가 찾던 사공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