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솜돌과 독자들을 위한 첫 단편 동화 1부
옛날 옛날 어떤 마을에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사는 할머니가 살았단다. 개들은 희거나 먹색의 털을 가졌고 더러 노랗고 갈색의 털빛을 띄곤 했지. 그 중에서 점박이 무늬를 가진 한 아이는 하얗고 검은 털이 얼룩덜룩 온 몸을 덮었는데, 둥그런 배와 짧은 다리가 숯불을 담아두는 화로를 생각나게 했단다. 아이의 이름은 숲돌이. 이름을 지을 때 할머니는 바람에 고요하게 흔들리는 잡목숲을 떠올렸지. 숲처럼 고요하고 나무처럼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면서 말야.
할머니의 소원은 절반만 이루어졌어. 튼튼한 숲돌이는 힘이 셌고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 했지. 동생 까비가 먹던 밥도 빼앗아먹고 말야. 때로는 까비를 장난감처럼 여겨 으르렁거리며 바닥에 눕히고 마음대로 얼굴을 핥아주고는 했단다. 가여운 까비의 얼굴은 순식간에 누군가 깔아뭉개고 떠난 풀밭이 되곤 했지 뭐야. 할머니는 골똘히 생각했어. ‘숲돌이는 키스 플린트를 닮았어.’ 그러곤 슬며시 웃다 갑자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단다.
숲돌이는 늘 신이 났어. 할머니와 산책을 나갈 때면 토끼뜀을 뛰듯 깡충거렸고 간식을 받을 땐 깍쟁이처럼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살짜쿵 먹었단다. 산책할 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빨리 달렸어. 하지만 짧은 다리 때문에 빠르게 달리지 못하고 헐떡였지. 숲돌이는 늘 마음이 급했어.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마당에서 방 안으로 뛰어들려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혀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지. 차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려 코를 바닥에 찧기도 했단다. 할머니를 하무이로 부르기 시작한 아이도 바로 숲돌이였어.
하무이가 외출을 나가면 숲돌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어. 숲돌이는 하무이가 걱정됐어. 하무이를 지켜줄 수 있는 개는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벼락과 천둥이 치는 날에 화장실 변기 뒤에 숨는 아이는 숲돌이 밖에 없었는데도 말야. 하무이는 맛있는 밥을 주고 밖에 나가 함께 걷고 뛰었어. 밤에는 배를 쓰다듬어 주다 꼭 끌어안으며 토닥거려줬지. 뽀뽀도 해 줬어. 물론 숲돌이도 하무이를 사랑했지. 늘 언제나 하무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단다. 숲돌이에게 하무이는 동굴과 같았어.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는 동굴 말야. 하무이가 문을 열고 나가면 동굴은 사라지고 벌판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되었지. 숲돌이는 하무이의 영원한 짝꿍이 되고 싶었단다.
하무이는 새벽마다 탁자 위에 카드를 펼치며 괴상한 주문을 낮게 외우거나 구슬을 굴리며 점을 쳤어. 어두운 전등 불빛에 비친 하무이 눈썹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는데 그게 무섭게 보이진 않았어. 숨겨진 무언가를 조심스레 찾으려 하는 표정이었거든. 숲돌이는 그러한 하무이의 표정에도 안심하고 편안히 잠이 들었단다. 영원히 보이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이 더 나았거든.
또 어떨 때 하무이는 그릇을 다 씻고 갑자기 방 안에 불쑥 들어와 아이들 앞에서 춤을 추곤 했단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얘들아,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아주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신나했지. 산타 할아버지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 간식을 주며 숲돌이와 아이들에게 입맞춤을 했단다. 산책을 할 때에는 하무이가 직접 지은 ‘영치기 영차’라는 노래를 들려주곤 했는데 유일한 가사는 ‘영치기 영차’였고 귀가 따갑도록 무한반복됐단다.
숲돌이는 항상 하무이와 함께 있는 순간들을 꿈꿨어. 하무이가 밖에 나갈 때는 사라진 하무이를 쫓아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 나갈 수 없었어. “컹컹캥캥커엉오오오오우어” 다른 아이들도 숲돌이를 따라 울었어. 하무이의 집은 그만 동네에서 가장 시끄러운 집이 되고 말았지.
하무이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 숲돌이는 항상 불만이었어. 하지만 하무이는 숲돌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모두 사랑했지. 숲돌이는 아이들 중에서 유독 보늬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보늬는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잿빛 털을 가진 개였어. 명랑하고 몹시 상냥했지. 게다 매처럼 빠르게 달리곤 했단다. 숲돌이는 보늬가 지나갈 때마다 ‘히이잉’ 울며 싫다는 소리를 내곤 했지.
결국 하무이가 집을 비운 사이 숲돌이는 보늬를 물어 뜯기 시작했어. 보늬의 보드라운 털은 가끔 뜯겨나갔고 털에 피가 묻어 다리를 절뚝이고는 했지 뭐야. 보늬는 겁에 질려 옷장과 벽 틈에 들어가 나오지 않게 되었어. 도리어 숲돌이는 하무이에게 모든 것은 보늬가 잘못한 것이라며 우기기 시작했지. 하무이는 화가 났고 다른 아이들도 숲돌이를 피하기 시작했단다. 동생 까비마저 숲돌이를 외면했지.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자 숲돌이는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어.
어느 봄날 늘 산책하던 학교 운동장 너머 산까지 하무이와 아이들은 걷던 중이었어. 그곳에는 알싸한 향을 풍기는 찔레꽃이 만발했거든. 무언가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는 숲돌이는 벌들을 피해 찔레꽃 덤불 속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 밀었단다. 그때 덤불 속에서 기묘한 얼굴 하나가 숲돌이와 딱 마주쳤지. 하얗게 빛이 나지만 그 얼굴은 물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지.
“드디어 만났군.” 기묘한 얼굴은 웃으며 말했어.
“누구야? 얼굴이 왜 그래?” 숲돌이는 물었어.
“난 찔레꽃과 숲을 지키는 정령이야.”
“그럼 천사야?”
“천사는 무신…도깨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네가 산책 나올 때마다 멀리서 너를 보고 있었지.”
“나를? 왜?”
“높은 건물 식당에서 밥을 먹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눈에 띄는 것들이 있듯 그냥 네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야.”
숲돌이는 신기한 눈빛으로 찔레꽃 정령을 바라봤단다.
“숲돌아"
찔레꽃 정령은 숲돌이의 이름을 불렀어. 그리고 곧 말을 이어갔지.
"세상은 각 자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무리 사납고 무서운 사람이라두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 동물이나 식물들도 마찬가지고. 그것을 누군가는 찾아내고 누군가는 찾지 못했을 뿐이야.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아. 감춰져 있거든. 심지어 그 아름다움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들어 있어 보석처럼 은은하게 빛이 나지. 숲돌아, 너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찔레꽃 정령은 그만 전율하고 말았어. 부르르 몸을 떨어 오줌까지 지리는 줄 알았단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멋진 말이었거든. 그러나 숲돌이는 찔레꽃 정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어. 숲돌이는 그저 하무이와 하부지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은 것 뿐이었지. 정령과 헤어진 숲돌이는 나만의 아름다움이 뭘까 생각했지. 그러다 보늬처럼 하무이와 하부지 앞에서 다리를 모으고 수줍은 듯 앉아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하무이와 하부지는 네모난 휴대폰에 코를 박은 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단다. 산책하던 운동장에서 보늬가 공을 물어오자 숲돌이도 공을 물어왔지. 숲돌이는 몸이 똥동하고 다리가 짧아 쉽게 지치고 힘들었어. 공놀이는 즐겁지 않았어.
어느 날이었어. 하무이와 하부지는 커다란 슬픔에 빠졌지. 부니를 병으로 잃었기 때문이야. 언제나 조금 우울해보이던 부니는 많이 아팠어. 장례식장에 숲돌이도 초대됐지. 하부지와 하무이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부니와 산책하던 작은 공원숲에 멈췄단다. 숲돌이는 나무 그늘이 우거진 공원 속으로 뛰어들었다 얼굴에 온통 거미줄을 뒤덮은 채로 나왔어. 또 앉아 쉴 때면 솔잎이 수염처럼 대롱거리는 것도 모른 채 하무이와 할부지를 향해 상냥하게 웃곤 했단다. 눈가가 젖어 있던 하무이는 숲돌이를 보며 그만 웃음을 터트렸지. 그리곤 곁에 있던 하부지에게 말을 건넸어. “숲돌이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주가 있네.”
숲돌이는 하무이와 하부지가 웃을 때마다 자신이 보늬가 된 것만 같았지. 때로는 엎드린 채 뒷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살짝 비튼 상태로 유혹하듯 반짝반짝 다정한 눈빛을 보내곤 했단다. 하부지와 하무이는 큰 웃음을 지었어. 숲돌이는 행복했어. 하무이와 하부지를 웃게 한다는 것이 정말 큰 기쁨이었거든. 숲돌이는 기분이 좋지 않은 아이에게 다가가 벌러덩 누워 몸을 좌우로 비틀어댔단다. 숲돌이의 재미있는 행동을 다른 아이들도 따라했지. 또 몸이 아픈 아이 곁에 다가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꼬리를 흔들었단다. 아이들은 조금씩 숲돌이를 보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지.
숲돌이는 점점 내면에서 어떤 뜨거움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지.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예전에는 진짜 몰랐거든. 더 이상 까비의 밥을 뺏어먹거나 으르렁거리지 않았어. 또 시간이 지날수록 보늬를 물어뜯지 않았지. 보늬를 이기려 힘껏 뛰지도 않았고 보늬의 잿빛 털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어. 얼룩덜룩한 자신의 털빛이 독특하고 매력 있게 느껴졌어. 가끔 숲돌이는 찔레꽃 정령님이 말한 나만의 아름다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곤 했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 숲돌이도 제법 나이가 들었단다. 숲돌이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꼈어. 뛸 때마다 숨이 찼어. 제일 앞줄에서 신나게 뛰던 숲돌이는 맨 뒤에서 졸래졸래 따라오는 날이 늘었어. 물을 마시고 나면 켁켁거렸지. 결국 아침 산책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바닥에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단다. 하무이는 숲돌이를 병원에 데려갔지. 이름을 헷갈려한 접수 직원은 병원 기록부에 ‘숯돌이’라고 써넣었단다.
- 마지막 2부는 다음 주에..연재할 수 있을까요..?